합본 특별 한정판

김훈 산문의 정수
『자전거여행』을 다시 만난다


김훈 산문의 정수, 『자전거여행』이 새로운 장정의 합본 특별 한정판으로 선보인다. 그가 자전거 풍륜(風輪)을 끌고 전국의 산천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1999년이니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가 세상의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은 세월이 지나 혹은 변하고 혹은 사라졌지만,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새긴 문장과 사유는 세월을 단숨에 건너 생생한 빛을 발한다.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된 『자전거여행』을 한 권의 양장본으로 선보이는 이번 한정 특별판은 오래 두고 되새길 김훈 산문의 엄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김훈

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이강빈

1958년 덕적도 출생.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주부생활] [TV저널] 등의 사진작가를 거쳐 프리랜서로 활동중.

1

프롤로그
꽃 피는 해안선 · 여수 돌산도 향일암
흙의 노래를 들어라 · 남해안 경작지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 여수의 무덤들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 양양 선림원지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 태백산맥 미천골
복된 마을의 매 맞는 소 · 소백산 의풍마을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 안면도
다시 숲에 대하여 · 전라남도 구례
찻잔 속의 낙원 · 화개면 쌍계사
숲은 죽지 않는다 · 강원도 고성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 광릉 숲에서
나이테와 자전거 · 광릉 수목원 산림박물관
여름 연못의 수련, 이 어인 일인가! · 광릉 숲 속 연못에서
한강, 삶은 지속이다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강물이 살려낸 밤섬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한강의 자유는 적막하다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 · 조강에서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 · 김포 전류리 포구
전환의 시간 속을 흐르는 강 · 양수리에서 다산과 천주교의 어른들을 생각하다
노령산맥 속의 IMF · 섬진강 상류 여우치마을
시간과 강물 · 섬진강 덕치마을
꽃 피는 아이들 · 마암분교
빛의 무한 공간 · 김포평야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도요새에 바친다 · 만경강 하구 갯벌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는 자전거 · 남양만 갯벌
멸절의 시공을 향해 흐르는 ‘갇힌 물’ · 남양만 장덕 수로
시원의 힘, 노동의 합창 · 선재도 갯벌
시간이 기르는 밭 · 아직도 남아 있는 서해안의 염전
에필로그

2

프롤로그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 경주 감포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경기만 등대를 찾아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 영일만
산하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 · 중부전선에서
10만 년 된 수평과 30년 된 수직 사이에서 · 고양 일산 신도시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람들의 오래된 꿈 · 가평 산골마을
고귀한 것은 마땅히 강력하다 · 여주 고달사 옛터
길들의 표정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 · 하늘재, 지름재, 소조령, 문경새재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지옥 속의 낙원 · 식영정, 소쇄원, 면앙정
고해 속의 무한강산 · 부석사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 남한산성 기행
전쟁기념비의 들판을 건너가는 경의선 도로 · 파주에서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진도대교
마음속의 왕도가 땅 위의 성곽으로 · 수원 화성
가마 속의 고요한 불 · 관음리에서
망월동의 봄 · 광주
그리운 것들 쪽으로 · 선암사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 미륵의 손 · 안성 돌미륵
얼굴, 그 안과 밖에 대한 명상 · 광주 얼굴박물관
권력화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 · 모란시장
산간마을 사람들 · 도마령 조동마을
원형의 섬 · 진도 소포리
에필로그

다시 펴내며

“나는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또 갈라서는
그 언저리에서 나의 모국어가 돋아나기를 바란다.“


언젠가 그는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언어는 그렇게, 언제나, 사실에 가까우려 애쓴다. “꽃은 피었다”가 아니라,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쓰는 그의 언어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멀리하고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려는 그의 언어는,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정확한 사실을 지시하는 그의 언어는,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한없이 아름답다. 엄격히 길에 대해서, 풍경에 대해서만 말하는 그의 글 속에는, 그러나 어떤 이의 글보다 더욱 생생하게 우리 삶의 모습들이 녹아 있다.
그의 문장 속에서, 길과 풍경과 우리네 삶의 모습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들은 만났다가 갈라서고 다시 엉기어 하나가 되었다가 또다시 저만의 것이 된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프롤로그」)

봄은 숨어 있던 운명의 모습들을 가차없이 드러내 보이고, 거기에 마음이 부대끼는 사람들은 봄빛 속에서 몸이 파리하게 마른다.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이 춘수(春瘦)다.(「꽃 피는 해안선」)

죽음이, 날이 저물면 밤이 되는 것 같은 순리임을 아는 데도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빛 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맥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서만 반짝였다.(「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봄은 이 산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이 산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봄은 늘 거기에 머물러 있는데, 다만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복된 마을의 매 맞는 소」)

꿰맨 자리가 없거나 꿰맨 자리가 말끔한 곳이 낙원이다. 꿰맨 자리가 터지면 지옥인데, 이 세상의 모든 꿰맨 자리는 마침내 터지고, 기어이 터진다.(「찻잔 속의 낙원」)

언젠가 그는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산문이 명문인 것은, 상념이 아닌 몸으로 쓴 글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글 속에서, 오징어 고르는 법, 광어 고르는 법을 이야기하고, 좋은 소금을 채취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시 쓰는 “김용택씨”가 가르치는 섬진강 덕치마을 아이들의 소박한 생활들을 이야기한다.

인수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인수네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인수는 많이 울었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 마음은 슬프다. 나는 정말로 슬프다’라고 인수는 그날 일기에 썼다. 인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좀 시무룩한 아이가 되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서 밥을 먹는다. (…)
은미네 할머니 무덤은 학교 가는 길 산비탈에 있다. 학교에서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은미를 지분거리고 귀찮게 굴면, 은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 무덤에 들러서 그 못된 녀석들의 소행을 다 할머니한테 일러바치고 막 운다. 요즘엔 은미의 마음이 좀 열렸다. 슬픔이 다소 누그러졌는지 친구들하고 잘 놀고 아이들도 이제는 은미를 지분거리지 않는다. 은미는 그동안 정말로 고생 많았다.

일체의 평가나 감상 없이, 있는 그대로를 서술한 후, 그는 덧붙인다.

마암분교 이야기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전교생 17명인 이 작은 학교에서는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샘솟아오른다. 날마다 새로운 날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다. 삶 속에서 끝없이 이야기가 생겨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일인가. 봄에는 봄의 이야기가 있고 아침에는 아침의 이야기가 있다. 없는 것이 없이 모조리 다 있다.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고 가난과 슬픔이 있고 희망과 그리움이 있다. 세상의 악을 이해해가는 어린 영혼의 고뇌가 있고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성장의 설렘이 있다. 여기가 바로 세상이고, 삶의 현장이며, 삶과 배움이 어우러지는 터전이다.(「꽃 피는 아이들」)

그가 길과 풍경과 계절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문장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이다. 풍경과 우리의 삶이 그의 문장 안에서 일대일로 대응한다.
인문학자 박웅현의 말처럼, “줄을 치고 또 쳐도 마음을 흔드는 새로운 문장들이 넘쳐”날 뿐 아니라, 책을 펴들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그의 문장을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