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남에 대항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나 아렌트의 ‘정치 행위’ 개념을 통해 보는 쫓겨난 자들의 정치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통해 보는 쫓겨난 자들의 정치적 주체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쫓겨난 자’는 근현대 유대인의 정치사에서 초창기에 등장한 주체 개념인 파리아(pariah)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기도 하고, 오늘날 사회?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가 나치 독일에서 ‘독일계 동화 유대인 지식인’이자 ‘무국적 난민’으로서 겪었던 쫓겨남의 경험을 통해 획득한 관점 ― 파리아의 관점 ― 은 아렌트의 정치 행위 개념을 구성하는 중요한 계기이자 기준점이 된다. 이 책은 아렌트의 유대인으로서의 경험이 그의 정치 사유에 끼친 영향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되 조금 더 나아가 그 경험을 유대인의 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근현대 국민국가 및 사회에서 ‘쫓겨난 자’의 경험으로 확장하여 살펴본다. 즉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쫓겨난 자로서의 경험을 다른 쫓겨난 자들의 경험과 연결하여 그의 ‘정치 행위’ 개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혀나간다.

아렌트가 독일계 동화 유대인 난민으로서 겪었던 쫓겨남의 경험은 우리가 오늘날 직장에서, 동네에서, 내 집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쫓겨나는 무수한 경험과 겹쳐진다. 우리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몸이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별을 이유로 또는 기존의 성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나거나 그러한 이유로 가족이나 동료를 잃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쫓겨남에 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잃고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언어를 구성하고 집단적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가? 고통과 상처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상처가 고립과 혐오로 이어지지 않고, 저항과 연대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아렌트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며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동시에, 아렌트에게서 이후의 탐색을 위한 개념적 자원을 발견해나가면서 우리 시대의 문제를 확인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양창아

한나 아렌트와 주디스 버틀러의 사상에 관심이 많은 사회철학 연구자로 부산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쫓겨난 자들의 저항과, 함께 사는 삶의 장소의 생성: 한나 아렌트의 행위론」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 분회에 속해 있다. 요즘은 효용을 넘어선 철학의 쓸모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정치적 연대의 한 방법으로서의 철학 연구는 어떤 형태를 띨 수 있는지, 어떻게 그것을 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쫓겨난 자들의 저항과 함께 사는 장소의 생성

아렌트의 사상은 그가 독일철학(특히 현상학과 실존철학)을 고향으로 삼으면서 나치 독일에서 독일계 동화 유대인 지식인이자 무국적 난민으로서 유대 정치에 개입하면서 형성되었다. 아렌트의 행위 개념은 이러한 ‘철학과 정치의 긴장’과 ‘유대인 정체성 경험’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이다. 이 책은 아렌트의 유대인으로서의 특수한 경험이 쫓겨난 자들의 보편적인 정치와 역사를 사유할 수 있는 개념들을 발명하게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버려진 자들’ 또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자들’의 자리에서 시작된 저항과 투쟁의 정치적 의미를 탐구해나간다. 이러한 투쟁의 승패가 아닌 투쟁의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이 책이 발견하는 것은 투쟁의 현장에서 또 다른 ‘장소’에 관한 사유, 즉 ‘함께 사는 삶의 장소’가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밟고 억눌러도 다시 시작되는 쫓겨난 자들의 말과 행위에 이미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의 혁명과 크고 작은 투쟁들이 결국 실패하고 투쟁하는 사람의 상처만 남은, 더 나빠진 상황에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일은 시대착오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낙천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관주의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또한 차별받고 억압받는 약자들의 권리 주장과 이들의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반복되어서 이제는 특별히 더 이야기될 것도 없지 않냐는 냉소적 태도 역시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구조를 초과하며, 그 경험을 간과하지 않을 때 이야기는 같지 않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그 파장이 미미할지라도 자신의 상황에서 힘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배제와 추방의 현실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여러 번 반복된 오래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자 다시 쓰이기를 요구받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쫓겨난 자들의 자리에서 또 다른 삶의 장소에 대한 전망을 사유하는 일이야말로 갈 곳도 머물 곳도 잃은 이 시대에 우리가 사유해야 할 현안이자 철학적 사유의 과제임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1부(상실: 끝나지 않는 애도) 1장에서는 독일계 동화 유대인 난민의 경험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배제와 추방의 경험이 가능한 자리에 대한 고찰을 ‘낙인’의 문제와 더불어 살피고, 이러한 경험 속에서 쫓겨난 자들이 획득하는 분열된 정체성을 ‘파브뉴’와 ‘파리아’의 구분을 통해 탐구한다.

1부 2장에서는 쫓겨난 자들의 행위성의 원리와 조건을 살펴본다. 아렌트의 사유에서 기억과 우정은 정치 행위가 이루어지는 원리들 중 핵심 원리라 할 수 있고, 불멸성과 탄생성은 이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공동체’의 생성 조건이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쫓겨난 자들에게 동료와의 관계는 투쟁의 시작과 ‘생존’에 핵심적이며, 그 관계의 상실은 회복될 수 없는 빈자리와 더불어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남긴다. 이 빈자리에서 시작되는 행위는 이념보다는 정념에 의해 추동되며, 이 정념을 고려할 때 쫓겨난 자들의 정치 행위의 관계성의 의미가 밝혀진다.

2부(행위: 쫓겨난 자들의 저항과 응답의 요구)에서는 아렌트의 행위 개념이 지닌 ‘관계성’을 ‘드러남’과 ‘시작’의 의미를 통해 살핀다. 2부 1장에서는 ‘드러남’의 의미를 밝히는데, 아렌트가 행위를 설명할 때 종종 사용하는 가면과 퍼포먼스의 은유를 통해 타인의 존재 없이는 행위가 성립될 수 없음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행위자의 ‘자기 현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타인의 현존과 그들의 응답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타인의 응답 없는 자기 현시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한 세계가 ‘다른 것들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정치의 기본 조건인 복수성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 세계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거나 무한히 복잡한 면모를 지닌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회가 타자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고 타자를 제거하려고 들 때, 타자의 드러남은 세계에 대한 저항이자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부의 2장에서는 ‘시작’의 의미를 밝힌다. 한 세계가 용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기존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생성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쫓겨난 자들의 정치 행위는 새 세계로 열리는 ‘시작점’의 의미를 가지며, 그 뜻이 타인들에게 응답받고 이어질 때 비로소 새 세계가 열리는 ‘시작’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시작이 성립되려면 ‘외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세계에 ‘들림’으로써 응답하는 자들이 있을 때 새 세계는 시작된다. 이러한 시작의 개념은 정치철학에서 ‘자유’의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렌트의 자유 개념은 근대적 의미의 ‘주권적’ 자유나 개인의 소유권을 전제로 하는 ‘개인적’ 자유 개념에 저항하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함께’ 행위할 때에만 성립한다. 아렌트의 자유 개념은 한 세계에 살고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위가 이루어질 때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겨나는 관계적 ‘권력’ 또는 ‘잠재력’의 의미를 내포한다. 쫓겨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대 관계를 쉽게 끊지 않고 경쟁의 원리를 제압할 수 있는 ‘권력’을 구성해낼 때 아렌트가 말하고자 한 자유의 의미는 현실화된다.

3부(장소: 함께 사는 ’삶-의-형식‘의 생성) 1장에서는 쫓겨난 자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장소와, 비인간화되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기존의 삶과는 다른 삶의 형식을 실험하는 장소에 대해 다룬다. 정치적으로 볼 때 죽음은 ‘인간들 사이에서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이라고 아렌트는 정의했는데, 한 사회에서 누군가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곧 ‘사회적’ 죽음을 뜻하며, 말 그대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 개념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행위를 통해 획득해야만 하는 권리로서, 인간의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이 주장하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쫓겨난 자들이 행위를 통해 권리를 가질 권리를 주장한다고 할 때, 이는 세계 속에 자기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외침과 요구’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세계에 대한 변화의 ‘외침과 요구’로 나아간다. 이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쫓겨난 자들, 즉 정치 행위자들이 모여서 생겨난 ‘공적 영역’은 ‘저항의 장소’이자 ‘관계의 장소’가 된다. 거기서 쫓겨남의 경험에 대한 억울함의 호소와 경청, 토론과 더불어 이 사태의 부당함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죽은 듯이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고 자신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고통을 겪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3부 2장에서는 쫓겨난 자들의 언어에 대해 다룬다. 서로 다른 이유들로 쫓겨난 사람들의 상황을 알리는 말들은 그들 각자의 경험이 드러나는 ‘몸-말’로 발설되고, 기록되고, 나누어져야 한다. ‘철학’은 그러한 개인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말들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고, 의견과 편견 사이에서 요동하는 말들을 사유의 바탕이자 내용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이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며 당파적인 의견들이 부딪히고 연합하는 정치와의 긴장을 금방 해소해버리지 않을 때 하나의 입장이 절대적 진리로 물화되어 실재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보편성’이 아니라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관계의 상호적인 움직임을 간과하지 않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사유와 행위도 가능할 것이다.

3부 3장에서는 쫓겨난 자들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쫓겨남의 경험은 이제까지 자신이 맺어온 거의 모든 관계로부터 찢겨 나오는 것과 같은데, 그 상처는 어떻게 자기로 매몰되지 않고 밖으로 열려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아렌트의 ‘공통 감각(common sense)’을 선험적 조건도 아니고 동일한 공동체 안에서의 관습적 인식도 아닌 정치 행위로, 즉 타자를 만나 관계 맺으며 생겨나는 ‘사이의 감각’으로 다시 읽는다. 이 감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소통은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에서 시작되며, 안다는 것을 전제하기보다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쫓겨난 자들이 정치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저항력을 확인하고 자신들을 내쫓은 체제에서의 삶과는 다른 ‘삶-의-형식’을 실험하면서 이 감각은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나가며’에서 ‘이후의 사유’와 ‘이후의 삶’이라는 개념을 디딤돌 삼아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이 책의 자리와 남은 물음을 확인한다. 아렌트의 행위론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유대인에게 가해진 폭력의 여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도 자신의 사유가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이후의 사유’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의 사유’는 사건의 여파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유, 즉 ‘과거’에 일어난 ‘그 사건’이 우리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와, 지금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유이다. ‘끝나지 않음’을 외면하지 않고 죽은 동료들에 대한 책임과 남은 삶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이후의 사유’ 행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을 고집하는 곳에는 미래가 없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