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리뷰

두 시대를 관통하는 방관자이자 당사자 역사학자들이
21세기 변화에 대응할 자원을 20세기에서 구한다

현재의 우리와 100년 전의 사람들은 모두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살았었다. 100년 전의 사람들은 어떠한 자원과 힘으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했을까? 또한 어떠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급격한 변화에 이르게 되었을까? 시대가 이상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수많은 요인들이 있었기에 변화를 되돌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왜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변화 속에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또, 급작스러운 변화 이전부터 있었던 어떤 관성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막았을까?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변화’를 체감하고 인지했는지를 고찰해 오늘의 생각을 재정립한다면, 21세기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00년 전 사람들이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 자원, 의미,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정서와 감정은 오늘날 변화에 대한 대응을 반성하게 해주는 거울이 될 것이다.



목차

총론: 근대적 ‘변화’에 대한 동아시아인의 체감 _박경석
1장 속도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한국의 교통망 근대화와 일상의 변화 _이기훈
2장 일본 통치하 타이완인의 ‘이기주의’ 민족성을 둘러싼 여러 인식: 식민지 초기에서 1920년대까지 _저우쥔위
3장 3‧1 운동의 밤 _권보드래
4장 같은 ‘개조’를 두고, 표상은 제각기: ≪여성과 가정≫에 나타난 여성 담론(1919~1920) _옌싱루
5장 1923년 관동대지진과 ‘모던’ 도쿄의 시대감각: 곤 와지로의 고현학을 중심으로 _함동주
6장 100년 전 ‘신형 매체’의 진보와 역사 경관의 변화 _장칭
7장 근대 시기 중국인은 해외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나?: 여행자의 시선을 통해 본 ‘근대 여행’ _박경석
8장 근대 중국에서 중등교육의 사회사적 분석: 난징국민정부 시기(1928~1937)를 중심으로 _오사와 하지메
9장 상관행의 변화를 통해 본 ‘일상’의 근대적 재구성: 근대 시기 중국의 ‘명문화된 상관행’을 사례로 _박경석
10장 직업의 ‘여성화’: 고도(孤島) 시기 상하이의 소학교 교사 _롄링링



저자소개 : 이기훈, 저우쥔위, 권보드래 외

이기훈: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이다.
저우쥔위(周俊宇):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술원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이다.
권보드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옌싱루(顔杏如): 국립타이완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다.
함동주: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장칭(章淸): 중국 푸단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다.
박경석: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이다.
오사와 하지메(大澤肇): 일본 주부대학(中部大學) 국제관계학부 교수이다.
롄링링(連玲玲): 타이완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책속에서

근대적 교통체계는 형성 과정 자체가 폭력적이었다. 일제는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철로나 정거장 용지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수용했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1906년 5월 15일 자 ≪대한매일신보≫가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 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했다”라고 개탄할 지경이었다. 철도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공개처형을 당했고 의병들의 공격에 대비해 철도 주변 사람들에게 연대책임을 지워 매일 철도 주변을 순찰하도록 했다. 철로나 기차에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철로를 침범하거나 운행 중인 기차에 올라타기만 해도 벌금이나 태형에 처해졌다. 일본인이었던 철도국 직원들은 조선 민중에게 경찰과 같은 존재였고, 자칫하면 철도의 차장이나 선로 감독에게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호남선 철로를 넘어가는 조선인 노인을 일본인 선로 감독이 철봉으로 때려서 목숨을 잃게 만든 사건이 대표적이다. _36~37쪽

거꾸로 소급해 생각하자면 그렇듯 한국 사회주의의 첫 장면에 3·1 운동을 두려는 경향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박헌영을 위시해 김단야·이승엽·주세죽 등 후일 사회주의자로 활동한 인물 중 상당수가 3·1 운동으로 사회적 경력을 시작했으며, 33인 대표의 위임으로 상하이에 파견됐던 현순 일가의 궤적이 보여주듯 3·1 운동을 직접 겪지 못한 세대에 있어서조차 사회주의 활동가 중 다수는 ‘3·1 운동의 후예들’이었다. _85쪽

‘현모양처’를 둘러싼 의견은 두 가지 견해로 나타났다. 하나는 ‘변화’로 포장한 채 여성과 국가의 연결을 강조한 ‘현모양처’이고, 다른 하나는 ‘현모양처’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당시 일본 여성의 여권신장운동과 관련한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여성을 현모양처라는 ‘정상궤도’에 회귀시키려는 시도였다. 전자는 식민지에서 정부의 입장을 널리 알리려는 것이고, 후자는 식민지에서 ‘신여성’에 대한 확산을 막으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현모양처’ 사상에 관한 연장선에서 식민지에 따라 등장한 의견도 존재했다. _138쪽

관동대지진은 곤 와지로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대지진의 폐허를 보면서 도쿄라는 도시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이전부터 도시 조사에 관심을 가졌던 곤 와지로는 이를 통해 도쿄에 대한 기록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현학은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도쿄 일대가 한순간에 파괴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결과 당시의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의 생활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도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과거 지향적인 야나기다 구니오의 민속학과 결별하고 당대의 도쿄에 대한 자료 수집을 추구한 것이 고현학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농촌 민가 연구를 통해 과거의 일본 문화를 찾으려던 야나기다 구니오의 민속학을 ‘고고학’으로 빗대어, 자신의 학문을 ‘고현학’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_160쪽

이런 상황에서, 근대 중국의 지식인이 자신에게 ‘근대성’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 서구와 세계의 현실을 보고 느끼면서, 일국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구국’을 위해 외국의 장점을 배우고 때론 침략에 저항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청 말에 이미 구미와 일본을 여행했던 수많은 명망가들의 사례에서 잘 나타났다. 민국 시기 중국의 해외여행도 근대 중국을 압도했던 내셔널리즘 내지 ‘구국구망’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강한 내셔널리즘의 반영은 ‘근대 여행’의 출현이라는 근대적 변화를 규정했던 주요한 특징적 면모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_204~205쪽

그러면 왜 당시의 민중은 중등학교에 진학했을까. 앞서 서술했듯이 민국 시대에는 왜 다수의 중·고등교육기관이 탄생하고 수량적으로 발전을 이루었을까. 학생 및 보호자 측의 진학 의식은 앞에서 보았듯이 반드시 명확한 것만은 아니었다. 단, 학생의 직업관을 분석해보면, 도시의 화이트칼라 직업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화이트칼라 직업에 취업하려면 중등학교 학력은 불리했고, 오히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편이 유리했다. 따라서 1930년대 직업교육이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에만 몰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식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직업교육이 ‘보통교육화’되는 현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_250쪽

이처럼 전통 시기의 ‘행규’에서 근대적 ‘업규’로 전환되면서 ‘국가권력의 개입’이 크게 강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상관행의 명문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상관행을 제도화·법률화해 국가권력이 상인단체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상업과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상공업의 근대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상관행’을 새롭게 명문화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_262쪽



출판사 서평

전통과 일상을 무너뜨린, 빨라진 시간과 확대된 공간, 신형의 변화를
당대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약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17년에는 러시아혁명이 일어났고,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일본에서는 ‘쌀 파동’이 일어났다. 또한 1919년에는 한국에서 3·1 운동이, 중국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났다. 타이완에서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쌀 파동’이 자극제가 되어, 20년 가까이 된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정치·사회적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이 단계에서 동아시아는 빠르게 도시화 과정에 접어들었고, 대중문화와 소비사회가 점차 형성되었으며, ‘모던 소녀’가 청소년 문화와 성별 의식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의 양상은 국민국가의 부상에 압도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세계를 인지하는 새로운 방법이기도 했고, 신체의 감각과 참여, 체험을 모두 포함했다.
근대적 속도는 제국주의를 전 지구에 걸쳐 확산시켰다.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기선과 철도, 새로운 도로망을 통해 지구적 범위에 걸쳐 대규모의 군대를 신속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상품시장이 끝없이 확장되면서 근대적 생활양식도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경제적 영역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근대적 속도는 인민들의 생활 속에서 시간과 공간 감각, 이동의 범위, 작업의 리듬과 규칙, 삶의 일상적 규율을 모두 바꿔놓았다. 급격히 빨라지는 생활의 속도에 적응하는 능력이 새로운 생존경쟁에서 필수적이었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인문한국사업단의 ‘21세기 실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이라는 의제의 성과물인 이 책은, 한국학의 재정립과 관련해 ‘한국’이라는 일국의 범주가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비교사적으로 접근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설정해 밖에서 안으로 향함으로써 한국사가 가지는 일국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편성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기도 하다.

공통의 시대적 ‘체감’에서 역사의 동력을 찾아낸다

내셔널리즘과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정치사나 경제사만으로는 묘사할 수 없다. 사회생활의 역사를 이해해야 다양한 대중운동이나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사회생활에 초점을 맞춰,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각 지역의 근대적 변화를 고찰했다. 지역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공통의 시대적 체감에 주목함으로써 20세기 역사의 동력을 찾아내고자 했다.

1장 「속도의 시대에서 살아남기」에서 이기훈은 ‘빨라진 속도’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근대적 교통망이 삶의 속도를 어떻게 변화시켰고, 그것이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2장 「일본 통치하 타이완인의 ‘이기주의’ 민족성을 둘러싼 여러 인식」에서 저우쥔위(周俊宇)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관계에 주목했다.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지탱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차이’를 통해 근대적 변화가 체감되었음을 보여준다.
3장 「3·1 운동의 밤」에서 권보드래는 3·1 운동 자체에서는 사회주의적 지향을 찾아볼 수 없지만, 식민지 시기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3·1 운동의 후예’였다는 데 주목하며, 3·1 운동을 통해 잉태된 수많은 변화들을 고찰했다.
4장 「같은 ‘개조’를 두고, 표상은 제각기」에서 옌싱루(顔杏如)는 1919년 식민지 타이완에서 창간된 일본어 여성 잡지 ≪여성과 가정(婦人と家庭)≫에 담겨 있는 여성 담론을 통해, 당시 식민지 타이완에서 생활하던 일본인이 새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고찰했다.
5장 「1923년 관동대지진과 ‘모던’ 도쿄의 시대감각」에서 함동주는 도쿄가 관동대지진의 피해를 복구하며 새로운 ‘모던’ 도시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1920년대 도쿄의 시공간이 지닌 역사성을 읽어보고자 한다.
6장 「100년 전 ‘신형 매체’의 진보와 역사 경관의 변화」에서 장칭(章淸)은 ‘신형 매체’의 진보와 이로써 초래된 여러 가지 변화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근대 시기 ‘신형 매체’, 즉 신문과 잡지의 출현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를 고찰했다.
7장 「근대 시기 중국인은 해외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나?」에서 박경석은 중국의 여행자들이 ‘여행 체험’을 통해 근대를 어떻게 체감했는지에 주목했다. 즉, 여행자의 시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해명함으로써 그들이 ‘근대 여행’이라는 근대적 변화를 어떻게 실감했는지 살펴보았다.
8장 「근대 중국에서 중등교육의 사회사적 분석」에서 오사와 하지메(大澤肇)는 중국의 학교교육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고찰했다. 우선 상하이 지역 중등교육의 발전을 개관한 후, 1920~1930년대 중·고등학교 학생의 실태, 심성, 사회계층, 입학 동기와 진로 모색 등을 살펴보았다.
9장 「상관행의 변화를 통해 본 ‘일상’의 근대적 재구성」에서 박경석은 상업관행의 변화에 주목해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일상적 생업’에서 근대를 어떻게 체감했는지를 고찰했다.
10장 「직업의 ‘여성화’」에서 롄링링(連玲玲)은 이른바 ‘고도 시기’ 상하이의 수많은 여성이 직업으로 희망한 소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그것이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