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평전: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다산 정약용 평전』은 저자 박석무는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예리한 통찰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실천적 학자로서의 다산을 새로이 조명하고 있다. 인권과 사회 보장의 선진적인 조치들을 강구하며 핍박받는 민중의 애환을 보듬은 목민관이자 학자, 시인이자 경세가였던 다산의 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 박석무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으나, 1973년 유신 반대 유인물인 전남대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때의 결실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1979)가 출간되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네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정치 활동 중에도 다산 연구를 이어 나갔다.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전 2권), 『다산 정약용 일일수행』(전 2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역주 흠흠신서』(공역), 『애절양』, 『다산 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 선집』(공편역), 『다산 문학 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그 외에 「다산 정약용의 법률관」 등 많은 다산 관련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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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1부 암행어사 출두요!

1 슬픔을 이기자 득의(得意)의 때가 오다
암행어사 정약용
수령의 잘잘못을 정확히 평가하다
일생의 경세 철학을 확립하다

2 민생도 중하게 국법도 존엄하게
왕의 측근도 예외 없는 엄격한 국법 적용
비통한 농민의 삶을 시로 읊다
요직에 올라 정조의 총애를 받다
반대파의 모함으로 권력에서 멀어지다

2부 학문과 정치의 바탕을 다지다

3 영특하고 글을 잘 아는 소년
요동치는 세상, 다산의 탄생
아름다운 고향, 한강 상류 마재 마을
8대 옥당 가문
남다른 시재를 보인 다산의 유년 시절
서울의 명문가와 혼인하여 상경하다
성호의 실학에 마음 기울이다

4 아름다운 남도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닦다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화순(和順)에 머무르다
경서 주석을 고치기 시작하다
학승 연담 유일과 만나다
남도의 풍광을 시로 읊고 글로 쓰다
진주 남강에서 배를 띄워 논개를 기리다

5 자신의 의지와 학문의 방향을 밝히다
학풍(學風)은 살기(殺機)였네
진사과에 합격하고 정조와 처음 만나다
그리운 성호 선생의 옛집을 찾다
『천주실의』를 읽다
『중용』을 함께 연구한 이벽의 죽음
마침내 문과에 장원 급제하다
공렴(公廉)으로 정성을 바치련다

3부 정조를 보필하여 정치의 일선에 서다

6 험난한 벼슬길의 시작
왕의 총애와 함께 반대파도 늘어나다
신해옥사로 반대파의 표적이 되다
정약전의 문과 급제
큰 스승, 아버지의 별세
화성 축조로 기술 관료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다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좌천되다
봉곡사에서 성호를 만나다
유용한 학문으로 요순시대 만들자
동적인 다산, 정적인 퇴계를 만나다
다시금 정조의 부름을 받다

7 서울로 돌아와 정조를 보필하다
죽란시사(竹欄詩社)를 만들어 문인들과 교유하다
규장각에서 능력을 발휘하다
천진암에서 노닐던 서정 시인
상소를 올려 천주교와 절연했음을 밝히다

8 처음이자 마지막 목민관 생활
곡산으로 부임하다
다산의 명재판
혼신의 정열을 바쳐 백성을 다스리다
애민의 마음으로 저술한 『마과회통』
지역 경제 살려 낸 경영 정신
현역 목민관으로서 암행어사가 되다
중앙에서 벼슬하면서 황해도의 폐단을 바로잡다
삼농 정책을 건의하다
서울로 복귀하여 미제 사건을 해결하다
관계에서 영원히 떠
쓰러져 가는 세상을 공정公과 청렴廉으로 일으키고자 한
위대한 실천 지식인 다산의 모든 것을 읽는다
다산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집대성한 다산의 삶과 정신

전 생애를 통해 병들고 썩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며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선각자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다산 정약용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거듭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엄중한 경고까지 내렸다. 이에 다산은 현실에 활용하면 부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혁안을 마련해 두었으니, 그것이 바로 다산의 개혁 사상, 실학사상이다.
그간 다산을 말할 때면 늘 고된 유배 생활,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써낸 수많은 글들이 먼저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다산은 이론에 앞서 행동을 중시한 실천가였다. 다산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 박석무는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말년의 역작 『다산 정약용 평전』을 통해 예리한 통찰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실천적 학자로서의 다산을 새로이 조명한다. 인권과 사회 보장의 선진적인 조치들을 강구하며 핍박받는 민중의 애환을 보듬은 목민관이자 학자, 시인이자 경세가였던 다산의 전 면모를 오롯이 담았다. 공직자의 ‘공렴(公廉)’, 즉 공정과 청렴만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기본이며 실천에 옮기는 행동만이 학문의 근본 목적이라던 다산의 철학은 여러 병증을 앓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새겨야 할 정신이다.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옵니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요동치게 한 대형 사건,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음에 이르게 한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던 1762년에 다산은 태어났다. 강건한 두 임금 영조와 정조의 시대는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질 만큼 흥성했지만 그 안에는 여러 대립과 모순이 배태되어 있었다. 다산은 1789년, 정조 13년에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둔하고 졸렬해 임무 수행 어렵겠지만,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노라”(139쪽)라는 시로 합격 소감을 읊으며 결의를 다진 다산은 3년 후 정조의 밀명을 받아 암행어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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