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

후마니타스


◆ 책소개 ◆

『올로프 팔메』는 현대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의 틀을 매듭지은 사민당 총리이자, 총상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스웨덴의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조명한 책이다. 격동기에 나라를 이끈 지도자의 모델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웨덴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목차 ◆

서문 6
올로프 팔메 연표 20

1장___1986년 2월 28일, 두 발의 총성 21
2장___부르주아 출신의 사회주의자 65
3장___그를 사회주의자로 만든 것은 미국이다 91
4장___1952년, 스웨덴 총학생연합 의장 113
5장___보헤미안 정치인 131
6장___43세, 총리가 되다 169
7장___사회민주당, 44년 만의 패배 219
8장___세계 외교사에 스웨덴을 새기다 : 열강을 위협한 제3의 외교 노선 257
9장___팔메가 남긴 유산 289

부록 1_더 알아보기 311
부록 2_숫자로 보는 한국과 스웨덴(2010~12년) 361

참고문헌 376
감사의 글 384


◆ 출판사 서평 ◆

1986년 2월 28일, 두 발의 총성.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짧았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만나다


◆ 현대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의 틀을 매듭지은 사민당 총리
◆ 미소 열강 사이에서 약소국이 운신할 틈을 만들며 ‘중립 노선’을 새롭게 정의한 외교가
◆ 정치인의 신념과 정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매력적인 정치가

“지난 20년간 스웨덴 정치에는
친(親)팔메와 반(反)팔메 그리고 팔메, 이렇게 셋만 있었다.”

__칼 빌트

1987년 스웨덴 온건당 소속 전 총리(1991~94)이자 현 외무부 장관인 칼 빌트는 올로프 팔메에 대해 이와 같이 평한 바 있다. 팔메가 총리가 되어 집권한 시기(1969~76, 1982~86)는, 스웨덴 사민당과 전국노동조합연맹(LO)의 강고한 결합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구가되던 복지국가의 동력에 균열이 생긴 동시에, 스웨덴 복지 제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오랜 산고 끝에 도입된 임금노동자 기금이 이에 반대하는 기업인의 거센 저항 끝에 결국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면서, 사민당과 LO의 관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한편, 이 시기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부모 육아휴직 제도가 개혁되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으며, 보육 시설과 교육 기회가 확충되는 등 양성평등 지표는 높아졌다. ‘국민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기존의 스웨덴 복지 제도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포괄하며 사회 안전망을 한층 더 촘촘하게 한 결과, 현재의 보편적 복지의 기틀이 완성된 시기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44년간 이어져 온 사민당의 장기 집권이 팔메의 첫 번째 총리 임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 뒤 1982년 팔메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가 1986년 암살당하는 것으로 마감된 두 번째 임기를 포함해, 지금까지도 스웨덴에서는 보수 연합과 사민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다. 이 시기에 복지국가 스웨덴의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이들도 있었으나, 복지 제도 및 실태가 후퇴했다는 명백한 지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집권당의 부침 및 교체와 무관하게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음에 주목한다면, 오늘날의 스웨덴 복지 제도와 정치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메가 총리로 있던 10년, 즉 스웨덴의 복지에 근대성이 가미된 그 역동적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화가 위협당하고, 정의가 거부되고, 자유가 위기에 처하는 곳마다,
그곳이 중동이든, 중앙아메리카든, 남아프리카든, 핵무기 사용이 논의되는 곳이든, 팔메는 그곳을 찾아 중재를 이끌었다.”

__헨리 키신저

미국의 국무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1986년 3월 팔메의 장례식에 참석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선보인 팔메의 역할을 이와 같이 기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중립 노선을 견지하며 국가 안보를 지켰던 스웨덴이 국제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시기는 팔메 집권기였다. 이는 학문적으로 팔메를 다룬 연구들이 대부분 그의 외교정책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팔메의 말은, 당시 미소 열강 사이에서 약소국이 운신할 틈을 만들어 낸 그의 외교적 역량과 의지를 잘 드러낸다. 1970년 영국의 『더 타임스』는 “[스웨덴은] 오히려 국제 정세에 깊게 관여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중립을 활용하고 있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264쪽).

1968년 2월 21일,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시위대 앞에서 팔메는 미국을 맹렬히 비판했다(270-273쪽). 이후 스웨덴과 미국의 관계가 1년 넘게 단절되기도 했는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연설이 있고 나서 몇 달 뒤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였다. 그날 저녁 침공에 반대하고자 모여든 10만여 명의 스웨덴 시민 앞에서 연단에 오른 팔메는 의도적으로 베트남전 반대 연설을 그대로 차용해 국가 이름만 ‘미국’에서 ‘소련’으로 바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잔인한 공격을 비난했다. 이후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 데 목소리를 내는 등 스웨덴식 중립이 “어떤 세력을 향해서든 자유롭게 자신의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적극적 중립”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팔메가 기여한 바는 컸다. 팔메의 죽음을 다룬 이 책 1장에서,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암살의 배후를 손꼽을 때 극우 세력, 쿠르드노동자당, 군수산업, 남아공 인종 분리주의자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도 팔메의 적극적인 외교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내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부고에 뭐라 쓰일지를 신경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긴다. 용기가 사라진다. 생명력을 잃는다.
그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당신도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

__올로프 팔메

1969년 올로프 팔메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의 신념에 대해 담담히 밝힌 이 발언은 그의 느닷없는 죽음을 한층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아직 한국에 온전하게 소개된 바 없는 그의 삶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1927년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개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그의 일생을 20세기 스웨덴의 근현대사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격동기에 나라를 이끈 지도자를 다루며 정치와 정치가의 모델을 보여 주는 설명서이자, 스웨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다. ‘낯선 정치인’을 우리 관점에서 돌아보게 함으로써 좋은 정치인, 좋은 시민, 좋은 사회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은, 한국 독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영어로 된 자료조차 한정적인 올로프 팔메를 국내 저자가 직접 다룬 데서 연유한 성과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찾아간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미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며 여행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노력에 따른 결과나 선택이 아니라 피부색이나 타고난 가난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확인한 젊은 시절의 경험, 그리고 스웨덴 총합생연합에서 펼친 국제적 활동은 2~4장에서 소개된다. 이를 통해 보수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부유한 가문 출신인 팔메가 사민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총리로 자리매김하고, 약소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교가로 활동하게 된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53년 타게 에를란데르(23년간 총리로 재임)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이후 행적까지 소개한 부분에서는 정치가 팔메의 삶을 따라가는 한편, 그가 총리로 있을 때 도입한 제도들을 비롯해 그 바탕에 놓인 이론적인 고민과 당시 사회상, 사민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치 활동 등을 엿볼 수 있다(5~8장). 부록에는 스웨덴의 정치와 사회를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본 항목들과, 한국과 스웨덴 사회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지표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타게 에를란데르와 올로프 팔메가 함께 자료를 살펴보는 모습. 1969년 팔메는 에를란데르의 뒤를 이어 스웨덴 총리이자 사민당 대표가 되었다. 팔메는 에를란데르의 보좌관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그 시기에 사회민주주의자로서 가치관을 정립했다.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팔메가 반베트남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모습. 그의 오른쪽에 모스크바 주재 북베트남 대사인 응우옌토쩐이 있다. 이날 팔메의 행진 및 연설 이후 미국과 스웨덴의 외교 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유엔 사무총장인 쿠르트 발트하임과 팔메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1976년 선거에서 패한 후 총리직에서 물러난 팔메는 이란과 이라크 간 분쟁을 중재해 보라는 발트하임의 제안에 따라 국제 문제에 적극 관여했다. 이 같은 활동은 1982년 다시 총리가 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1985년 가을 총선 때 연설하고 있는 팔메의 모습. 이는 이듬해 암살당한 팔메가 치른 마지막 선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스웨덴의 총리 올로프 팔메가 암살당했다. 1986년 2월 28일.”
팔메가 쓰러진 스베아베겐 거리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팔메가 걷던 평화, 자유, 연대의 걸음은 그의 죽음과 함께 멈추었다. 그러나 그는 한 연설에서 특유의 낙천성과 진보에 대한 신념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아름다운 날이 우리 앞에 있다.”

■ 올로프 팔메 연표

1927 출생
1947~48 미국 오하이오 주 케니언 대학 인문학사(정치학?경제학 전공)
1949 사민당 가입
1951 스톡홀름 대학교 법학사
1952~53 스웨덴 총학생연합 의장
1953 세계 학생회의 참가(아시아 6개국 방문)
1953~63 사민당 출신 총리인 타게 에를란데르의 보좌관
1955~61 스웨덴 사민당 청년 리그 지도자 및 위원
1956 리스베트 벡-프리스와 결혼
1958~86 의회 의원
1963~65 무임소 장관
1965~67 교통 및 통신부 장관
1967~69 교육문화부(교회부) 장관
1969~86 스웨덴 사민당 의장
1969~76, 1982~86 스웨덴 총리
1976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부회장
1986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


◆ 저자소개 ◆

저자: 하수정 저자 : 하수정
저자 하수정은 포항 한동대학교에서 미국법을 전공한 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한겨레신문사 20주년 창간 기념사업으로 매그넘 작가 20명이 대한민국을 촬영해 사진집을 내고 전시를 했던 매그넘 프로젝트를 기획?담당했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유학길에 올랐다.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 석사과정을 마쳤다. 재학 중에 학교 대표로 세계학생환경총회에 참가했고, 지속 가능한 웁살라 대학교 만들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한겨레』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로 복직해 지속 가능 발전과 관련한 몇 가지 연구에 참여했다. 앙리 루소가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살고 그 밖의 시간에는 관심 가는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하고 기고하고 강연도 한다. 주요 관심 분야는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유, 북유럽, ESD, 예술, 철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