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리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란의 여성, 노동자,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와 저항》(책갈피)을 번역했다.

세계 자본주의는 2008년 경제 위기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세계의 지배자들은 이런 실패의 대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겼다. 그래서 체제가 낳은 문제들에 저항하기 시작한 사람들,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반대하고, 해고와 임금 삭감에 맞서고, 세월호 참사에 항의해 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자연스레 대안을 모색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경제는 왜 자꾸만 위기에 빠질까? 불평등은 왜 더 심해질까?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훌륭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으면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시장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런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 갓 운동에 동참하고 사회 변화에 관심 갖기 시작한 사람들, 주변 동료들과 자본주의와 그 대안을 두고 토론하려는 사람들에게 간결하지만 명쾌한 답을 준다.




목차

1장 자본의 야만성
2장 계급 문제
3장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
4장 노동당의 의회주의
5장 투쟁의 학교
6장 단결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다
7장 "그런 일은 결코 얼어나지 않을 거야 …"
8장 왜 혁명인가
9장 스탈린의 사회주의 왜곡
10장 사회주의와 인간 본성
11장 지도자들의 정당

더 읽을거리



책속에서


• 1장 자본의 야만성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자본주의)는 모순에 찬 체제다. 이런 모순들은 경제 위기가 터질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든 일이 잘 돌아갈 때면 체제의 논리에 의문을 품지 말라고, 자본주의야말로 최상의 체제고 인간 본성에 맞는 체제라고들 한다. 우리는 그저 잠자코 체제 논리에 복종하면 된다.


그러나 일이 잘 안 돌아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탔다”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말한다. 막대한 돈을 부자와 권력자한테 쏟아붓는다(이들이야말로 내내 가장 멍청하고 게으른 자들이었음이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 2008년에 각국 정부는 금융기관들이 망하지 않게 하려고 자금지원, 신규대출, 지급보증 형태로 8조 4240억 달러(1경 원)를 썼다. … 하루 생활비가 1.25달러(1378원) 미만인 14억 명을 가난에서 구제하는 데 매년 1730억 달러(191조 원)만 있으면 된다. 바꿔 말해 2008년에 들인 돈을 바로 이런 사람들한테 직접 지원했으면 지구 상에서 50년간 극빈 상태를 없앨 수 있었다. …
전쟁과 경제 위기가 여전히 인류 삶의 되풀이되는 특징이다. 심각한 생태계 파괴로 인류의 미래 자체가 위험에 처했다. 앞으로 또다시 200년간 이런 식으로 자본축적이 가능할지, 100년이나 50년 동안이라도 가능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학살극이 한창일 때 독일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로 이행이냐, 야만주의로 퇴보냐”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룩셈부르크의 단호한 선택은 점점 더 우리 몫이 되고 있다.

• 2장 계급 문제
우리는 계급사회에 산다. 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엄청 공을 들인다. 돈이 엄청 많은 최고경영자와 ‘사업가’, 사장 등은 사회가 뚜렷이 나뉜다거나 이런 격차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털끝만치도 용납하지 않는다. …
우리는 이제 모두 중산층이라거나, 우리 사회가 계급 없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거나, 계급에 관해 말하는 것은 조야하고 구닥다리라는 식의 분석은 널렸다. 그러나 그런 분석은 생산수단(공장, 사무실, 콜센터, 농지, 은행 등)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작은 집단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한다. 이들이 바로 지배계급이다. …
지배계급은 사회의 나머지와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뚜렷이 구별되는 사회계층이다. 우리의 피와 땀이 저들의 이윤이다. …
더 좋고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부자의 재산 일부를 빼앗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지배자들한테서 사회적 권력을 박탈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빼앗아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주의자는 지배계급과 대립하는 처지에 놓인 계급(노동계급)에 기대야 한다. …
전 세계의 이런 노동계급은 그저 고통받는 대중이 아니다. 노동계급에게는 힘이 있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 셈이다” 하고 썼다.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디어를 내자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본가한테는 참 안된 일이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생각과 감정이 있다. 기업인 헨리 포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나는 한 쌍의 손을 고용할 뿐인데 언제나 거기에 사람이 딸려 온다.” …


사회주의자가 노동계급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노동자한테는 힘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에서 중심적 구실을 한다. 런던의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수도 전체가 멈춘다. 지하철 사장들이 파업하면, 기껏해야 근처 고급 와인바 사장 정도만 신경 쓸 것이다. …
사회주의자가 노동자한테 기대는 둘째 이유는 이 계급이 다른 피착취 집단과 달리 변화를 이루려면 집단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 노동자들이 회사나 정부로부터 돈을 더 받고자 한다면 함께 행동해야 한다. 해고를 막으려 할 때도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공장이나 사무실을 접수해 운영하고자 할 때도 한 덩어리가 돼야 한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쪼개서 각자 자기 몫만 가지고 일할 수 없다. 집단으로 공장을 접수하고 집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노동자 투쟁은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운동이었다. …

• 3장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
계급 분열이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지만, 체제는 다른 많은 분열을 만들고 강화한다. 이런 분열들 탓에 체제에 맞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노동자들이 때때로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같은 사상은 역사가 깊지만, 인류 사회의 영원한 특징은 아니다. 이런 차별들은 각각 특정 시점에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데, 그것들이 체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걸 돕기 때문이다. …
사회주의자의 출발점은 억압받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억압의 희생물이 된 노동자를 방어하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억압받는 사람이 누구이든 모든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반대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사회주의자라면 임금이나 노동조건 같은 기본적 계급 쟁점을 두고 싸울 뿐 아니라,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해 폭정과 억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그 피해자가 어느 계급이나 계층이든 상관없이 폭정과 억압이 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맞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 투쟁은 ‘분리주의’라는 함정과 아무나 가리지 않고 연합하려는 함정 둘 다를 피할 때 가장 강력하다. 필요한 것은 더 급진적인 유형의 단결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 투쟁은 노동자의 힘과 결합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
억압에 맞서 함께 저항하자는 생각을 인종, 성별, 성 정체성의 구분 없이 모든 노동자가 받아들일수록 이런 쟁점을 둘러싼 투쟁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으로 만들어진 단결은 노동자들이 착취에 맞서서 벌이는 투쟁도 강화한다. …
사회주의자의 목표는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즉,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모든 사람이 함께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억압은 이런 사회에서 물질적•사회적 토대를 잃고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편견을 만들고 낡은 편견을 되살려 낸다. “혁명을 기다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투쟁한다면 자본주의 아래서도 진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결국 억압을 영원히 없애려면 사회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 4장 노동당의 의회주의
사회주의 전통에는 양대 경향이 있다.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핼 드레이퍼는 그것을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통”이라고 불렀다. 즉 민주적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권위주의적인 “위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의 핵심 사상은 마르크스가 썼듯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의 행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에는 강력한 적수가 있다. 이들은 노동자를 위해서 그리고 노동자를 대신해 변화를 선사하는 것이 완전히 옳다고 믿는다. …
노동당 개혁주의는 훌륭한 국회의원을 — 사회주의자라면 더 좋을 테지만, 적어도 노동계급과 진보를 지지하는 괜찮은 인물을 — 선출해 정권을 잡은 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그럴듯한 전망이고 혁명을 이루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쉬워 보인다. 그러나 노동당 개혁주의는 실패했다. …
지금껏 노동당의 행적을 보면, 야당일 때는 급진적 언사를 늘어놓다가도 집권해서는 친자본주의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펼쳤다. …
노동당은 권력이 의회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권력은 의회에 있지 않다. 선거로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사람이 공장과 사무실을 소유하고, 똑같은 사람이 군대와 경찰을 지휘하고, 똑같은 사람이 언론을 지배한다. 기업과 은행의 이런 선출되지 않은 경영자들은 자기 이익을 거슬러 행동하는 정부는 언제든 없애려 들 것이다. 이런 세력은 정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길 요구할 텐데, 경제 위기 상황에서 특히 심하다. …
노동당의 역사는 희망을 배반해 온 역사다. 노동당이 체제나 국가에 정면 도전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결정적 순간이 되면, 노동당은 자기 지지자들의 계급적 이익보다 ‘국익’을 옹호한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걸 뜻한다. 노동당이 현재 행태와 단절하려면 자본의 지배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체제에 맞서서 노동계급의 힘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노동당이 거부하는 길이다. …
진지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자본가들과 지배계급의 공격에 맞서서, 전쟁에 반대해서, 인종차별에 반대해서,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여러 투쟁에서 노동당 지지자들과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당이 결정적 순간에는 항상 기대를 저버리고 자본주의 정책을 지지할 것임을 똑똑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때문에 노동당을 대신할 사회주의적 대안을 건설해야하고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을 전파해야 한다.

• 5장 투쟁의 학교
노동자가 자본가의 힘에 맞서려면 조직돼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 조직은 노동조합이다. 노동자 혼자는 약하지만, 단결해서 함께 요구하면 커다란 힘이 있다. …
노조가 힘이 있으면 자본가들이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키지 못하게 제약할 수 있다. 노조는 자본가가 유연성이 모자란다고 여긴 노동자를 해고하고 자기 요구에 기꺼이 맞춰 줄 사람으로 대체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
모든 파업은 자그마한 지역적 투쟁조차 노동자들이 자기 힘과 단결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노조는 이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모순적 조직이다. 노조는 사용자에 맞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그렇게 한다. 노조는 인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만, 사용자와 협상을 통해 그렇게 한다. 노조는 고용주의 ‘권리’를 인정한다. 그래서 노조는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지만 이 세상에도 뿌리박고 있다. …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분열은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분열이다. 이런 분열(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분열)이 근본적이다. 어떤 산업 투쟁이든 우리의 태도는 특정 부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정치적 이익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 중대한 분열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 상근간부와 현장조합원 사이의 분열과 상근간부 속에서 좌파와 우파 사이의 분열이다. …
노조 간부가 온건해지는 주된 이유는 직접 뇌물을 받거나 편한 삶을 살아서, 국회의원 자리를 노려서가 아니다. 노조 상근간부층이 노사 협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회적 구실에서 비롯한다. 노조 간부는 노동자와 사장 사이에 타협이 이뤄지도록 교섭하는 구실을 한다. 그는 노동자와 사장이 생기는 체제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
좌우파 노조 지도자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좌파는 투쟁을 고무하고 파업 중인 조합원을 방어하는 데 훨씬 적극적이다. 사회주의자는 노조 직책에 우파보다는 좌파가 선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도 모든 노조 지도자가 받는 압력에 똑같이 영향을 받고 최상의 좌파 지도자조차 다른 노조 지도자들과 공개적으로 단절하는 것이나 노총 또는 자기 노조 안의 다른 간부들을 비판하는 것을 꺼린다. 핵심은 노조 직책이 없는 평조합원(즉 현장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이다. 현장조합원 네트워크는 노조 지도자들한테 압력을 넣을 수 있고 다른 노동자들의 지지를 조직할 수 있다.

• 6장 단결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다
공산주의자는 광범한 노동계급의 일부이자 구분되는 일부여야 하며, 다른 모든 이들이 전진하게끔 밀어붙이는 구실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구실을 일치시키려 노력해 온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의 역사였다. 그러려면 두 가지 함정을 피해야 한다. 첫째 위험은 흔히 ‘종파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종파주의는 자기와 광범한 노동계급을 차별화하는 데서 출발해, 현실 운동에서 비켜선 채로 그저 바깥에서 노동자들이 여러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거나 전술적 오류를 저지른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걸 뜻한다. 둘째 오류는 운동에 용해된 채, 어려운 과제의 제기나 힘들게 얻은 역사적 교훈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회피하는 것이다. …
트로츠키는 혁명가들이 파시즘의 부상에 맞서 싸우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과 ‘공동전선’을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동전선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혁명가들과 (오늘날의 노동당 지지자들처럼 자본주의가 쉽게 개혁될 수 있다고 믿는) 개혁주의자들이 한데 모이는 걸 뜻했다.
혁명가들은 공동전선 안에서 독립성과 조직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사상을 주장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광범한 세력과 협력하면서도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상으로 설득하려 애써야 한다. …
트로츠키의 조언은 우리 시대의 투쟁에도 유용한 출발점이 된다. 오늘날 혁명가들은 혁명에 한참 못 미치는 요구들을 내건 여러 운동에 참가한다. 이런 싸움을 거쳐야만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혁명가들이 그런 투쟁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협력해야만 다수를 자기편으로 설득할 수 있다. 트로츠키가 제안한 기본적 방법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 7장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야 …”
사람들에게 노동은 대체로 의미 없는 고역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나, 그것을 생산하는 방식,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통제하지 못한다. 우리는 늘 처지를 개선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런 충고는 사람들이 대개 경험하는 현실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꾸길 간절히 바라는 경우에도 기껏해야 자신들을 대신해 위로부터 이뤄지는 단편적 개혁에 의지할 뿐이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완전히 반하는 구실을 하는 사상을 곧잘 받아들인다. 부조리하거나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세상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사상, 민족주의, 자유 시장 숭배 같은 사상이 우리의 경험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또는 하나의 “모순된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처한 조건 때문에 언론과 교육제도, 정치인들, 여타 권위자들이 뒷받침하는 세상에 대한 ‘상식’적 생각들을 곧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 그러나 그람시는 노동자에게 “자신의 활동”에 기초하고 “실제로 동료 노동자와 단결해서 현실 세계를 변혁하는 실천에 나서게 만드는” 또 다른 생각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들은 상식과 대비되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공동 투쟁과 초보적 연대 활동, 동지애도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상식’적 생각들과 충돌한다. …
의식 변화가 실제로 확고히 자리 잡으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집단적 활동이다. 정치 활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에게 첫 시위 경험은 깨달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불평을 늘어놓던 힘없는 개인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바꾸려는 집단의 일부가 된다. 또 처음으로 국가의 폭력을 목격하고 경찰의 진짜 구실을 이해할 수도 있다. 파업을 벌이고 규찰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낀다. 즉 자신들의 집단적 힘을 사용해 진정한 변화를 일굴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투쟁들이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면 훨씬 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과거의 믿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할 수 있다. …

• 8장 왜 혁명인가
혁명은 혁명가 집단의 의지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 혁명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대체로 과거에는 그런 문제를 결코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정치 무대의 한복판에 나설 때 발생한다. 러시아의 1917년 2월 혁명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신물이 난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에서 시작됐다. 파업 노동자들은 공장 창문에 눈덩이를 던져 다른 노동자들을 대열에 동참시켰다. 이 운동은 강력하게 발전해 차르 독재를 무너뜨렸다. …
혁명적 상황 또는 때때로 ‘준혁명적’ 상황이라고 불리는 것은, 레닌에 따르면 “하층계급이 옛날
방식대로 살길 바라지 않고 상층계급도 옛날 방식대로 살아갈 수 없을 때” 시작된다.
20세기 전반기에 자본주의는 전쟁과 경제 위기를 거치며 거듭거듭 그런 상황에 봉착했다.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자본주의는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생산과 금융이 무정부적으로 세계화되고, 2008년부터 엄청난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자본주의가 그런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려 애쓴 탓이다. …
지배계급은 혁명을 분쇄하는 데 도움이 될 모든 기회를 활용하려 들 것이고 제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온갖 야만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지배자들이 사용하는 주된 무기는 바로 자신들의 국가다. …
국가기구를 형성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공장, 은행, 사무실 등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계급)이다. 지배계급의 국가는 ‘질서’를 창출한다. 그 질서는 부자와 권력자가 사회 대다수를 착취할 권리를 보장하고, 정부가 다수의 바람을 무시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법원이 시청료를 납부하지 못한 여성을 가둘 권리를 보장하고, 인종차별적 경찰이 흑인 청소년들을 괴롭힐 권리를 보장한다. 국가의 토대는 항상 폭력이며, 그런 폭력은 다른 국가를 겨냥할 수도, 억압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 자국민을 겨냥할 수도 있다. 사실 국가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자본주의 국가를 차지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면, 그 대신 국가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이 자신을 착취했던 자들을 제압하는 데 쓸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창출해야 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기에 존재했고 1871년 72일간의 파리코뮌 기간에 잠깐 존재했던 국가가 바로 이런 국가였다. 마르크스는 코뮌을 다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반란으로 생겨난 노동자 정부가 파리를 다스리던 시절, “보통선거는 3년이나 6년마다 지배계급의 어느 구성원이 민중을 속여 의회에서 대표 노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민중에게 봉사하게 됐다.” 코뮌을 구성한 대표들은 노동자들 가운데 선출됐고, “언제든 소환 가능”하고 “노동자 임금”을 지급받았다. 경찰은 “코뮌의 통제를 받고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코뮌의 공직자가 됐다.” …
세력 관계가 압도적으로 노동계급 쪽에 유리하다면, 혁명 때 발생하는 폭력은 최소한에 그칠 것
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다수에게 극소수의 지배를 강요하려니 매우 폭력적일 수밖에 없지만, 사회주의자의 목표는 압도 다수의 지배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배자도 없고 지배받는 사람도 없는 계급 없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

• 9장 스탈린의 사회주의 왜곡
카를 마르크스가 제시한 전망의 핵심은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행위로 이루리라는 것이다.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민주적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밑바닥부터 재조직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일어난 일이다. 투쟁 중에 노동자들이 만든 대표체인 소비에트는 새로운 사회를 이룰 새싹이었다. … 농촌에서는 오랜 세월 포악한 지배계급의 탄압을 받던 농민이 토지를 장악해 재분배했다. 노동자 위원회가 많은 공장을 접수해 관리했다. …
어디서나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고, 볼셰비키는 그것을 장려했다. … 전에는 소수 특권층만 다니던 대학이 대중에게 개방됐고, 교사들은 농촌에 들어가 처음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막 벗어나 나라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여러 문화적 실험이 이뤄졌다. 옛 러시아제국에서 억압받던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도 자결권과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 여성들도 자신이 처한 끔찍한 조건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회화된 보육 시설, 세탁소, 식당이 설립됐고 낙태, 피임, 이혼이 합법화됐다. 동성애는 비범죄화됐고 교회와 국가가 사람들의 성적 관계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법으로 못 박았다. 이런 성과는 당시 서유럽 ‘선진국’들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에게 허용됐던 것들을 훨씬 앞지른 것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권력을 쥐자 이런 아래로부터의 해방이 깡그리 부정됐다. 스탈린 정권이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든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획일적 국가 통제 사회였고, 민주주의와 토론이 사실상 사라졌다. 스탈린이 통치한 러시아의 핵심 목표는 다른 자본주의 사회들과 똑같았다. 바로 축적하라, 축적하라, 또 축적하라였다. 정권은 노동자들한테 빵과 버터냐 핵미사일이냐, 극장과 영화관이냐 탱크와 트랙터냐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했다. 이것은 일종의 ‘국가자본주의’였다. 시장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자본주의도 노동자 착취와 경쟁(그러나 이제는 여러 자
본가가 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러시아와 경쟁 국가들 사이의 국제적 경쟁)에 기초를 뒀다. 러시아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운영됐고, 어마어마한 생산수단을 발전시켜 경쟁자들과 산업적•군사적 경쟁을 벌였다. 새로운 체제가 자리를 잡자 사회의 온갖 낡은 특징이 되살아났다. 이제 소수 민족이 새로운 스탈린주의 제국에서 억압받았고, 낡은 성차별•인종차별 태도가 되살아났고, 문화 활동은 더욱 엄격히 통제됐다. …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는 두 가지 필수 전제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 생산력(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하는 능력)이 사회를 부족함 없이 지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발전해야 한다. 둘째, 노동계급이 아래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민주주의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성숙해야 한다. 어떻게 러시아에서는 소수인 노동자들이 부족한 물적 자원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투쟁을 이끌 수 있었을까?
트로츠키와 레닌 같은 볼셰비키들은 혁명이 국제적인 것이 되기만 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를 첫 신호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연속해서 일어난다면, 그 뒤 유럽에서, 궁극적으로는 세계적 규모로 동원 가능한 노동계급의 힘과 물적 자원 덕에 사회주의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전망을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혁명 전에, 심지어 혁명 후에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나라, 즉 더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혁명이 즉각, 적어도 아주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괴멸될 수밖에 없다.” …
1918년부터 혁명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노동자들이 권력 장악에 성공하지 못했다. 혁명은 고립됐다. 러시아는 이미 3년 동안 세계대전을 치른 상태였고, 이제는 혁명을 되돌리려 열강이 획책한 내전의 참사에 직면했다. 혁명의 민주적 엔진 구실을 한 노동계급이 1920년대에 전쟁과 기아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다. 1922년에 산업 노동계급의 수는 1917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신생 노동자 국가의 힘이 심각히 훼손됐다. 혁명을 이끌었고 혁명의 민주적 심장부를 이루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미 살해됐거나 살아남으려 버둥대고 있었다. 볼셰비키가 내전에서 승리했지만 볼셰비키의 적들은 혁명의 토대가 된 계급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
혁명이 약화하자, 스탈린은 새로 팽창한 사회 세력(차츰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국가 관
료들)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스탈린 밑에서 이 세력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국제 혁명이라는 목표에 등을 돌리고 그 대신 ‘일국사회주의’를 목표로 선언하는 걸 뜻했다. 사실상 이것은 ‘일국 국가자본주의’, 즉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서방 자본주의에서 사용된 모든 수단을 이용해 노동자와 농민을 훨씬 더 지독하게 쥐어짜는 것을 뜻했다. 스탈린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50~100년 뒤처졌다. 10년 안에 이 격차를 메워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를 분쇄할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 영국에서 수 세기에 걸쳐 벌어진 모든 끔찍한 일들이 러시아에서는 단 몇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발생했다. 스탈린주의 러시아가 경찰국가로 운영되고 불가피하게 사용되던 강압 수단들이 이제 미덕으로 칭송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 10장 사회주의와 인간본성
사회주의를 편드는 주장이라도 할라치면 곧바로 누군가가 다 좋은 소리지만 ‘인간 본성’ 때문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 좀 돌아보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인종차별적이고 탐욕스럽고 지배자들의 명령에 따라 서로 죽인다. 어쩌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다. …
그러나 난폭한 행동이 인간의 ‘천성’이라면 우리는 늘 잔인하게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 커다란 위험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놀랍도록 이타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 어떤 재난 기록에서든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천성적으로’ 이기적이라면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
인간 행동은 그 행위가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우리를 경쟁하게 만들고 출세를 위해 남을 짓밟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다. …
우리의 사회주의 전망을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계급과 계급 대립으로 얼룩진 낡은 자본가 사회 대신에,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등장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결정할 것이고, 그런 집단적 힘 덕택에 우리는 각자 자유로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면 어디서나 그런 사회를 어렴풋이 볼 수 있다. 조그만 파업도 지배계급의 사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거대한 파업은 사회 전체를 바꿔놓는다. 혁명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이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바뀐다. …
지금 체제에도 집중적 계획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별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하향식 계획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생산이 민주적으로 계획돼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터와 거리에서 마을, 도시, 나라, 지구 전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것이고 그 결정을 실행하는 데 동참할 것이다. 사회의 의사 결정자는 더는 차별화된 특권 집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것이다. 자원을 부자들의 사치품이나 엘리트 계층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는 대신, 가난과 기아를 없애는 데 쓸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다른 필요도 충족하게 될 것이다. 즉, 기본적 필수품을 충족할 뿐 아니라 문화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교육 방식도 개발할 것이다. …

• 11장 지도자들의 정당
혁명 정당은 자본주의 사회의 주류 사상과 단절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려 한다. 혁명 정당은 지도자들의 정당이 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지도자들과 추종자들로 나뉘지 않는다. 모든 당원은 각자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방향을 제시하려 애써야 한다. 혁명 정당은 아직 주류 사상과 단절하지 못한 노동자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눠야 하므로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 문호를 걸어 잠가서는 안 된다. 혁명 정당은 파업, 시위, 사회운동, 지역의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 투쟁을 거칠 때만 많은 비혁명적 노동자들이 사고방식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고, 혁명적 노동자들은 자신이 세상을 가장 예리하게 이해하고 그 세상을 바꾸는 최상의 투쟁 방법도 제시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 정당이 제구실을 해내려면 노동계급을 가르칠 뿐 아니라 노동계급한테 배우기도 해야 한다. 혁명 이론의 큰 발전은 위대한 이론가들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혁명 이론의 발전은 노동자들이 투쟁에서 새로운 조직 방식과 저항 방식을 개발한 덕택에 이뤄졌다. …
투쟁 시기가 지나가더라도,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활동 방식이 함께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는 혁명 정당을 “계급의 기억”이라고 불렀다. 혁명 정당은 과거 세대의 노동자들이 투쟁에서 배운 교훈들을 자신의 이론 속에 통합한다. 신문, 전단, 책, 모임, 토론회를 이용해 이런 지식을 새로운 노동자들과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없게 만든다. …
트로츠키는 당과 노동계급 사이의 관계를 피스톤과 증기의 관계에 빗댔다. 피스톤은 동력이 되는 증기 없이는 쓸모없다. 그러나 피스톤이 없으면 증기도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낭비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밀고 나가는 것은 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창의력, 열정, 힘이야말로 혁명의 추진력이다. 당은 이 분출하는 힘을 집중시키고 운동에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 …
그러나 불행히도 혁명 정당은 혁명이 빚어낸 열광 상태 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혁명 정당은 그런 순간이 도래하기 이전에 오랜 투쟁 속에서 당원을 모으고, 시험을 거치고, 훈련받아야 한다. 물론 혁명 정당은 혁명 속에서 성장해야 하지만, 그러자면 당이 이미 자기 주위에서 분출하는 운동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고, 충분히 뿌리내리고, 충분한 경험을 쌓고 있어야 한다.
20세기 역사는 세상을 바꾸려 무한한 용기를 내서 투쟁했지만 결국 지배자들의 폭력에 무릎 꿇고 만 피억압자들의 수많은 패배로 얼룩져 있다. 그 대가는 자본주의라는 야만이 계속되고 커진 것이다. 아무도 사회에 켜켜이 쌓인 분노가 언제 폭발해 다시 한 번 변혁의 가능성이 열릴지 예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닥칠 것이다. 혁명에서 지배계급이 동원할 힘에 맞설 조직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패배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세계 자본주의는 2008년 경제 위기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세계의 지배자들은 이런 실패의 대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겼다. 그래서 체제가 낳은 문제들에 저항하기 시작한 사람들,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반대하고, 해고와 임금 삭감에 맞서고, 세월호 참사에 항의해 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자연스레 대안을 모색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경제는 왜 자꾸만 위기에 빠질까? 불평등은 왜 더 심해질까?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훌륭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으면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시장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까? 모두 다른 세상이 가능한지를 묻는 진지한 물음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런 물음들에 간결하지만 매우 진지하고 설득적인 답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사회 불평등의 심화를 계급 문제로 설명한다. 계급으로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구닥다리라고들 하지만 계급은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에는 생산수단, 즉 공장∙사무실∙콜센터∙농지∙은행 등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작은 집단이 존재하고 바로 이들이 지배계급이다.
지은이들의 말대로 “지배계급은 사회의 나머지와 이해관계가 뚜렷이 구별되는 사회계층이다. 우리의 피와 땀이 저들의 이윤이다.”
지배계급은 계급사회라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엄청 공을 들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지독히 불평등하고 빈부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1011명의 세계 억만장자들은 경제 위기 직후인 2009년에만 재산을 50퍼센트나 불렸다. 이 1011명의 재산 합계는 3967조 원에 달하고, 이것은 세계 하위 소득 50퍼센트(35억 명)의 재산을 몽땅 합친 것보다 네 배나 많다. 바로 경제 위기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실업이 급증하고 삶의 질이 곤두박질칠 때 벌어진 일이다.
이 책은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혁명이 꼭 필요한 이유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주변 사람에게 혁명을 얘기하면 곧바로 ‘현실 사회주의’문제가 튀어나오고, 폭력과 인간 본성을 근거로 반박하는 주장을 곧잘 듣는다. 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지 않느냐고도 얘기할 것이다.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런 진짜 사회주의는 대중운동에 기초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참여에 토대를 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혁명은 흔한 오해처럼 소수 음모가들의 폭동이 아니라 압도 다수가 스스로 해방하는 과정이다.
이 책이 지적하듯이 “20세기 역사는 세상을 바꾸려 무한한 용기를 내서 투쟁했지만 결국 지배자들의 폭력에 무릎 꿇고 만 피억압자들의 수많은 패배로 얼룩져 있다. 그 대가는 자본주의라는 야만이 계속되고 커진 것이다. 혁명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지만, 혁명에서 지배계급이 동원할 힘에 맞설 조직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패배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 혁명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이번에야말로 혁명이 성공하려면 준비되고 역량 있는 혁명 단체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이제 갓 운동에 동참하고 사회 변화에 관심 갖기 시작한 사람들, 주변 동료들과 자본주의와 그 대안을 두고 토론하려는 사람들에게 간결하지만 명쾌한 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