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소설들은 이미 교과서에 실려 있고 논술대상 추천도서로도 꼽히는 작품들. 그러나 ‘양파’에 비유될 만큼 그 속에 담고 있는 은유와 상징이 다채로운 연암 문장은 청소년들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 이에 작품 속에 빈번히 인용되는 중국 신화나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에 관해 그림 자료와 함께 친절한 주를 덧붙여 깊이 읽기를 도왔다.

이 책은 연민 이가원 선생이 《연암소설연구》에서 작품 시기에 따라 연암 소설을 구분한 방법을 취해, 세 장에 나눠 실었다. 1장에 실린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김신선전〉 〈광문자전〉 〈우상전〉은 연암이 18세 때부터 30세 때까지 지은 것으로 《방격각외전》에 실린 작품들이다. 2장에 담긴 〈호질〉과 〈허생〉은 44세 때 지은 《열하일기》에 실린 작품들이며, 3장의 〈열녀함양박씨전〉은 57세 때 지은 작품이다. 이러한 구성은 각각의 작품들을 ‘연암 박지원의 삶과 사유의 선상’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좀 더 깊은 인식과 이해를 끌어낸다는 장점을 지닌다.

허경진

1953년 출생.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 사사師事. 1974년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4년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열상고전연구회洌上古典硏究會 회장(현), 연민학회淵民學會 편집위원장(현), 서울시 문화재위원(현)이다. 저서著書 『허균평전』, 『사대부 소대헌 -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조선의 중인들』, 『조선위항문학사』, 『대전지역 누정문학연구』, 『넓고 아득한 우주에 큰 사람이 산다』, 역서譯書 『서유견문西遊見聞』,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 『다산 정약용 산문집』, 『연암 박지원 소설집』, 『삼국유사三國遺事』, 『매천야록』, 『택리지』, 『한국역대한시시화』, 『허균의 시화』 등이 있다.

머리말

1 세상을 향해 붓을 들다
방경각외전 머리말 | 마장전 | 예덕선생전 | 민옹전 | 양반전 |
김신선전 | 광문자전 | 광문자전 뒤에 붙여 쓴다 | 우상전
제목만 전하는 소설들 - 역학대도전·봉산학자전

2 날 선 눈으로 세상을 꿰뚫다
7월 28일 일기 부분 | 호질 | 호질 뒤에 붙여 쓴다 | 옥갑야화
허생 | 허생 뒤에 붙여 쓴다·1 | 허생 뒤에 붙여 쓴다·2

3 자유로운 감정의 발로를 노래하다
열녀함양박씨전

부록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 | 연암 연보 | 연암 소설 원문 영인에 덧붙여 | 연암집 영인본

냉철한 현실 인식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꿰뚫은 연암 박지원,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그의 문장과 사유를 만난다!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문장
연암 박지원이 살았던 조선 시대는 집안이 속한 정파에 따라 벼슬길에 엄격한 제약이 따랐고, 나라를 다스리는 선비라 하는 이들은 성리학의 말폐와 허울에 얽매여 백성의 생활과는 유리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양반 사회에 염증을 느끼던 연암은 명문가 자제라면 으레 따르는 과거 시험과 관료에의 길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번민하게 되고,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바로 그 고뇌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연암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기이하다. 똥 푸는 일을 하지만 고귀한 인격을 지닌 엄항수(〈예덕선생전〉), 세상을 버리고 신선이 된 김홍기(〈김신선전〉), 불우한 삶이지만 유쾌하게 누릴 줄 알던 민옹(〈민옹전〉), 기발한 능력으로 돈을 모으지만 모두 버리고 가난한 선비로 돌아온 허생(〈허생〉)…….
얼핏 보면 이들의 이야기는 황당무계하고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비유를 걷어내고 곰곰이 들여다보면, 주류 사회에서 벗어난 소외된 이들의 모습 속에는 바로 시대와 불화했던 연암 자신이 있다. 역설과 해학으로 빚어낸 그들의 삶 속에는 세상의 잣대를 교묘히 피해 가는 연암의 기지와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연암은 비천하고 기묘한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록 신분은 낮지만 신의와 우정을 소중히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참된 인간’이 있다는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가치가 살아 있지 못한 세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연암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인물, 다양한 서사 형식을 통해 실제와 허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꿰뚫었던 냉철한 시각과 그 날카로움을 유머로 풀어낼 줄 알았던 연암 박지원의 위대함이고, 오늘날 우리가 연암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