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발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로서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르 피가로」는 ‘한국에서 일어난 변화는 우주적 척도로나 가늠해야 할 엄청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눈부신 성과의 밑바탕에는 박정희의 리더십이 있었다.

박정희는 누구보다 많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 모두가 도전이었고 열정적인 삶이었다. 박정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리더다. 유엔개발계획은 농촌개발 및 빈곤퇴치 모범 사례로 ‘새마을운동’을 선정하였고, 중국의 덩 샤오핑 역시 당 간부들에게 ‘새마을운동’을 번역한 책자를 나누어 주며 “박정희를 배워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로 만들 수 있었는가를 배우기 위해 지금도 많은 나라 지도자들이 박정희를 롤모델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박정희를 20~30대의 젊은이들은 박정희를 잘 모를 것이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오로지 박정희를 추억할 뿐이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제 우리가 이것을 배울 때라고 전하고 있다.

머리말

CHAPTER 1 박정희처럼 “살아라”
가난은 나의 스승이다│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다│가슴 뛰는 꿈에 도전하다│시련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다│눈부신 미래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진정한 승부사│대통령 박정희 보다 인간 박정희

CHAPTER 2 박정희처럼 “도전하라”
강한 집념은 산도 옮긴다│자신감이 스스로를 버티게 한다│안전한 길은 죽은 자의 길이다│긍정의 입버릇이 성공을 부른다│절박하다는 것은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벼랑 끝으로 내몰아라

CHAPTER 3 박정희처럼 “일하라”
두려움 없이 소신껏 일하라│지금 즉시, 될 때까지 하라│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가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으라│목숨 걸고 일하라│작고 사소한 일을 놓치지 마라│나무보다 숲을 보라

CHAPTER 4 박정희처럼 “리드하라”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최고가 되라│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강한 카리스마로 리딩하라│스스로 갈고 닦는 샐러던트가 되라│닮고 싶은 사람을 벤치마킹하라│자신만의 성공 원칙을 정하라│가능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라

박정희의 삶을 통해 배우는 성공법칙!
박정희처럼 꿈꾸고, 박정희처럼 일하고, 박정희처럼 도전하라!


우리는 박정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박정희가 독재정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주도하여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에는 별 이의가 없다. 요즘 세계 경제가 어둡고 한국 경제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다 보니 박정희에 대한 평가나 향수가 더욱 강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리서치 앤 리서치의 ‘국가 발전에 가장 기여한 대통령’ 1위, 현대경제연구원의 ‘정권별 선진화 기여 평가’ 1위, 시사IN의 ‘역대 대통령 신뢰도 조사’ 1위 등 최근 매체들이 실시한 한국의 지도자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로서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르 피가로」는 ‘한국에서 일어난 변화는 우주적 척도로나 가늠해야 할 엄청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눈부신 성과의 밑바탕에는 박정희의 리더십이 있었다. 박정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리더다. 유엔개발계획은 농촌개발 및 빈곤퇴치 모범 사례로 ‘새마을운동’을 선정하였고, 중국의 덩 샤오핑 역시 당 간부들에게 ‘새마을운동’을 번역한 책자를 나누어 주며 “박정희를 배워라!”고 지시했다.
박정희는 누구보다 많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 모두가 도전이었고 열정적인 삶이었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으며 안 되면 되도록,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박정희’에 앞서 ‘인간 박정희’를 말한다.
이 책은 박정희에 관한 부정적인 면을 버리고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 저자는 박정희를 알면 알수록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가진 많은 장점이 우리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하루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성과를 내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외당하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이다. 이 책 『박정희 스타일』을 통해 그의 리더십을 배우고, 그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삶의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30대의 젊은이들은 박정희를 잘 모를 것이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오로지 박정희를 추억할 뿐이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가 이것을 배울 때이다.

“박정희처럼 살고, 꿈꾸고, 일하고, 도전하기를! 그래서 성공하기를!”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를 생각하라
대한민국을 이끈 ‘대통령 박정희’의 강력한 추진력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 건설, 서울연구개발단지와 KAIST 건립 등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된 굵직한 국책사업은 모두 박정희가 주도해서 이루어낸 성과이다. 그는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실행에 옮기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할까 말까 고민하며 미적미적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도 한시바삐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고속도로 건설에 있어서 방법, 공사 기간, 자금 조달, 투자 장비와 인원, 관리 등에 대해 상세하게 물었다. …… 박정희는 귀국하자마자 고속도로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에 대한 기록과 도로 전문가들의 연구 보고서를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검토했다.”(본문 150~151쪽)

하지만 결코 이 여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자금 문제에서부터 기술력 부족까지, 주변에 산적해 있는 문제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벌써 나가떨어질 만큼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되는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훨씬 더 많이 들면서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W. R. 휘트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수천 가지 이유를 찾고 있는데, 정작 그들에게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에는 ‘일부 부유층의 유람로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고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 역시 ‘세계에서 7개국밖에 소유하지 못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대기업 가운데는 수출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기업도 상당수였다. 결국 박정희는 초강수를 두었다. 1967년 8월 확대회의에서 현금차관 기업의 원리금 상환을 수출대금으로 결제하도록 의무화 시켰다. 즉 수출에 참여하지 않으면 차?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더 이상 기업들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도록 하나둘씩 수출에 나서게 만들었다.”(본문 53쪽)

“우리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하니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 ‘꿈이다’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민족의 꿈이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남북을 주파하고 싶은 것은 분명 민족의 꿈이다. 언젠가는 그런 역사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우선 경부고속도로부터 건설해서 우리의 꿈을 우리가 실현해 가자는 것이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절대로 된다고 확신한다.”(본문 190쪽)

당신도 혹시 무엇을 하기에 앞서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온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하거나 스스로를 바꾸고 싶다면 긍정의 마인드를 가져라. 그리고 도전하라. 당신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이고, 한낱 시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실패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멈춰 선 사람들이다.

위보다 아래를 볼 줄 아는 사람
‘대통령 박정희’가 아닌 ‘인간 박정희’를 배우다


박정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꿈과 노력을 통해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누구보다 가난으로 굶주리는 국민들을 안타까워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이 가난했기에 가난의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꿈은 잘사는 나라 만들기, 국민들이 굶주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가 되었다. 그의 꿈은 항상 위를 향해 있었지만 국민들을 생각할 때만큼은 모든 것이 아래로 향했다. 오늘날의 경제발전은 사실상 박정희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더 이상 국민들이 배를 곪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큰 꿈이 강력한 동인이 되어 그를 이끈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박정희를 ‘대통령 박정희’라고 말하기보다 ‘인간 박정희’로 부른다. 이는 평소 그에게서 권위를 내세운 모습보다 소탈한 모습으로 세심하게 주변을 챙기고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남모르게 고민하는 따뜻한 인간적인 면을 느끼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16일자「서울신문」에 '실명한 아버지에게 내 한 눈을'이라는 기사가 소개되었다. 실명한 아버지에게 딸이 자신의 한쪽 눈을 드리고 싶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 그 기사를 마침 박정희 대통령이 본 것이다. 박정희는 즉시 정종택 충북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녀의 아버지가 수술을 통해 앞을 볼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그는 또 만약 각막이식 수술이 가능하더라도 절대 소녀의 한쪽 눈을 못 쓰게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본문 72~73쪽)

“경기도 성남에 사는 한 가정주부가 청와대로 편지를 보내왔다. 서울역 앞에서 행상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몇 달째 누워 있어서 가족이 며칠째 굶고 있다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 그 편지를 접한 육영수는 비서관을 시켜 그 주부의 집에 쌀 한 가마니와 약간의 돈을 가져가도록 지시했다. …… 그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마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밥상에는 국그릇과 간장 종지가 놓여 있었고, 할머니는 양푼에 수북이 담겨 있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갈씩 입에 떠놓고 있었다. …… 그런데 잠시 후 시야가 밝아지면서 방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뿔싸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푼에 담겨 있는 것은 하얀 쌀밥이 아니라 아카시아꽃이었던 것이다. 비서관은 며칠 후 대통령 내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다녀왔던 성남 할머니 이야기를 보고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박정희는 수저를 놓은 채 말없이 천장을 응시했다. 나라가 가난한 탓에 국민들이 굶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정희는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이고 힘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약자에게 더욱 부드러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박정희를 ‘대통령 박정희’로만 기억하지 않고 ‘인간 박정희’로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이다.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에게 진정한 존경심을 표한다. 진심으로 용기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우리의 롤모델이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박정희만의 리더십
이보다 더 확실한 리더는 없었다!


박정희는 세계가 주목하는 대통령이다. “한국의 경제 회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제성장의 조건은 북한이 남한보다 순조로운 상태이다. 한국인들의 선택은 미국이냐 소련이냐가 아니라 서울이냐 평양이냐의 문제이다(「포린 어페어즈」, 1960. 10.).”라고 평가 받았던 대한민국 경제를 살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돌아보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일본은 100년,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이 걸렸다. 오로지 박정희가 이끈 대한민국만이 30년 만에 1만 달러를 달성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전쟁국, 못사는 후진국이라는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로 만들 수 있었는가를 배우기 위해 지금도 많은 나라 지도자들이 박정희를 롤모델 삼고 있다.

세계인들이 말하는 박정희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온몸을 바친 리더였다.
-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사회학 교수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한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 명예박사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박정희는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이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박정희의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의 창출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버홀트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 20명 중에 한 명이다.
- 뉴욕타임스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19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로 탈바꿈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 독일 국정교과서 중학교 지리, 109쪽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를 모델로 한 모방이다.
- 미국 RAND 연구소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