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플라이 오버 컨트리, 新고립주의, 제노포비아’
이들을 탄생시킨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최상위 1%가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21세기,
나머지 절반 속에 묶인 99%를 위한 본격 불평등 경제학!

2016년 4월 이후, 특이한 이름의 그래프 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꾸준히 받았다. 바로 '엘리펀트 커브(elephant curve), 우리말로는 쉽게 해석해 ‘코끼리 곡선’이 된다. 마치 코끼리가 코를 높이 들어올리는 모양에서 붙은 이름인데 세계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됐던 1988년부터 201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소득 수준에 따라 1~100개의 분위(가로, x축)로 줄 세웠을 때의 실질소득 증가율(세로, y축)이 얼마인지 나타낸다. 다시 말해 곡선의 높고 낮음에 따라 누가 얼마나(상대적으로) 소득이 늘고 줄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계화의 성적표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그래프에서 출발하여 약 20년간 이어진(그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세계화의 수혜자(빛의 영역)와 비수혜자(그림자의 영역)는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인지 ‘쿠즈네츠 파동’을 이용해 역추적한 것이 이 책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이다.

이 책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불평등이 전쟁, 질병, 기술변화, 교육기회 확대, 재분배 등의 요인에 의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밀라노비치에 따르면 150년 전 불평등을 유발한 요인이 산업혁명이던 것처럼, 최근 서구의 불평등이 급증한 까닭도 기술혁명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내 불평등이 급증하는 동안에도 중국과 인도의 글로벌 신흥 중산층 소득이 수십 년째 정체 상태에 있는 선진국 중산층의 소득 수준에 가까워짐에 따라 국가 간 불평등은 급감했다. 좀 더 개방적인 이주 정책이 도입된다면 글로벌 불평등이 한층 더 감소하리라는 것이 밀라노비치의 진단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불평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다 자기증식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가 금권정치와 포퓰리즘의 부상이나 전쟁 등으로 뒤바뀔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불평등이 현재 어느 수준에 이르렀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어떤 정책으로 불평등 심화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 모색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밀라노비치의 설득력 있는 해석은 이상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Branko Milanovic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로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이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워싱턴 소재 카네기국제평화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에서 선임자문위원으로 일했다. 불평등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저자는 전 세계 불평등의 역학을 참신하고 대담한 시각으로 제시하며 방대한 기존 자료와 최신 연구를 통해 국가 내 그리고 국가 간 불평등의 증가와 감소를 이끄는 양성 요인과 악성 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의 최대 승자와 최대 패자를 밝혀내고, 어떠한 정책을 통해 경제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제시한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가 있으며, <네이처(Nature)> 지, <세계은행 경제 보고서(World Bank Economic Review> 등에 세계 소득 분배에 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서정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냇웨스트, 크레딧 스위스 등의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근무했고, 이화여대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에지전략』, 『은행이 멈추는 날』,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화성: 마션 지오그래피, 붉은 행성의 모든 것』, 『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음악』 등이 있다.

장경덕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저널리스트로서 30년째 경제와 금융의 정글을 탐사하고 있다. 《정글경제특강》, 《정글노믹스》, 《부자클럽 유럽》, 《증권 24시》 등을 썼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토머스 프리드먼의 《늦어서 고마워》,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등을 옮겼다.

감수의 글 : 21세기 지구촌은 다시 평평해질 수 있을까
들어가며 :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우리’에게

제1장 글로벌 중산층과 금권집단의 부상
세계화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세계 소득 분포상의 절대적 소득 증가 : 승자는 얼마나 더 가지는가
금융위기의 영향 : 중국의 고속 성장과 글로벌 신흥 중산층의 부상
세계 최상위 1% : 그들은 누구인가
억만장자 : 진정한 글로벌 금권집단
보충설명 1-1. 전 세계 소득 분포 자료는 어떻게 산출될까?
보충설명 1-2. 소득 불평등의 절대적 vs 상대적 척도
보충설명 1-3. 10억 달러는 얼마나 큰 금액일까?

제2장 국가 내 불평등
: 쿠즈네츠 파동으로 살펴보는 장기 불평등 추세
쿠즈네츠 가설에 대한 반론의 근원
쿠즈네츠 파동 : 정의와 설명
평균소득이 정체된 사회의 불평등 : 14세기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
평균소득이 꾸준히 상승하는 사회의 불평등 :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대까지
제1 쿠즈네츠 파동의 하강을 유발한 요인은
무엇인가?
제2 쿠즈네츠 파동의 상승과 하강 요인은 무엇인가?
보충설명 2-1. 소득과 불평등의 동시 감소현상 : 로마제국 몰락기의 사례
보충설명 2-2. 사회주의 국가의 대평등화

제3장 국가 간 불평등
: 카를 마르크스에서 프란츠 파농에 이른 후
다시 마르크스로?
글로벌 불평등의 수준과 구성의 변화
시민권 프리미엄 : 시민권 지대와 글로벌 불평등
이주와 장벽 :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 사이에서
이주자 문제와 국경 개방에 대한 우려 : 네 가지 갈등에 대하여
보충설명 3-1. ‘지역’과 ‘계층’으로 분해한 글로벌 불평등

제4장 21세기와 앞으로의 글로벌 불평등
조심스러운 서론
두 가지 주요 요인 : 경제 수렴과 쿠즈네츠 파동
소득 수렴 : 저소득국가가 고소득국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인가?
소득 수렴은 아시아만의 현상인가?
중국과 미국의 국가 내 불평등
불평등의 위험한 대가 : 금권정치와 포퓰리즘
보충설명 4-1. 글로벌 불평등의 전망

제5장 21세기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소득 불평등과 세계화의 미래에 관한 열 가지 고찰
1. 이번 세기에 어떤 힘들이 글로벌 불평등을 만들어갈까?
2. 고소득국가의 중산층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3. 고소득 복지 국가의 불평등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4. 앞으로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할까?
5. 수평적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6. 노동이 다른 생산 요소와의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7. 경제 성장은 앞으로도 중요할까?
8. 경제학에서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사라질까?
9. 개별 국가 차원의 불평등 분석이 여전히 유효할까?
10. 세계화가 계속되면 불평등이 사라질까?

감사의 글
도표와 표 차례
주석
참고문헌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행위는 대부분 개별 국민국가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세계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화는 개개인의 소득 수준, 고용 전망, 지식과 정보의 양, 날마다 사는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한겨울에 신선한 과일을 구할 수 있느냐 여부까지도 결정짓는다. 또한 세계화의 등장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 국제 조세회피에 대한 단속과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governance)가 탄생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쟁규칙이 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소득 불평등을 국가적 현상으로만 보던 20세기 관습에서 탈피하여 세계적 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 p.12-13 A 지점은 전 세계 소득 분포의 중간값 근처에 있다(중간값은 분포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눈다. 즉 전체 분포가 중 위소득인 사람보다 잘사는 50%와 가난한 50%로 나뉘는 지점이다). 실질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 A지점에 해당한다. 일부는 20년 동안 실질소득이 80%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소득 성장이 중앙값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전 세계 소득 분포의 약 40분위부터 60분위에 이르는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했다. 이는 세계인구 가운데 1/5에 해당한다. --- p.29-30 B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A지점 사람들보다 부유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B지점의 세로축값이 0에 가깝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20년간 B지점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집단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대부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인 고소득국가 국민이다. 그중에서 동유럽 국가, 칠레, 멕시코 등 비교적 최근에 회원이 된 나라를 제외하면, 3/4 정도가 WENAO(Western Europe, North America, Oceania)로도 나타내는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 등 ‘전통적인 부자나라’와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다. (중략) 레이건-대처 혁명 이후에 자국과 세계 경제에서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던 서구 정치가들은 엄청난 찬양을 받던 세계화가 자국민 과반수에게 가시적인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듯싶다. 다시 말해 정치가들이 사회보장제도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점이 크다며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바로 세계화의 패자가 된 것이다. --- p.30-31 내가 제시하는 양성 요인은 5가지다. 첫 번째 요인은 세율 인상과 누진 과세의 강화로 이어지는 정책 변화다. 국민에게 완전한 선거권이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정책 변화는 ‘당연히’ 나타날 만한 일이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정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리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두 번째 양성 요인은 교육과 숙련도 간의 경주다. 특히 미국에서는 상승한 숙련도 프리미엄 가운데 일부가 고숙련 근로자의 공급 확대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중략) 세 번째 양성 요인은 기술혁명 초기 단계에 발생한 지대의 소멸이다. 기술혁명이 진행되고 다른 개인이나 기업이 초기의 혁신적인 주자를 따라잡게 되면 지대가 감소하거나 사라지고 소득 불평등이 축소된다. (중략) 고소득국가의 불평등 증가를 억제할 네 번째 양성 요인은 글로벌 차원의 소득 수렴이다. 한마디로 중국과 인도의 임금이 오늘날 고소득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우리가 목격했던 현상(제1장 참조)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글로벌 소득 수렴은 고소득국가의 중산층 공동화를 끝내고 국가 내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중략)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양성 요인은 현실보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저숙련 근로자의 생산성을 고숙련 근로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저숙련 편향적 기술진보가 바로 다섯 번째 양성 요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현재처럼 기술진보가 고숙련 편향적이거나 반복적 과업을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시대에는 얼마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내생적 기술변화(비용이 덜 드는 생산요소의 사용을 늘리는 식으로 기술이 적응하는 것) 이론이 시사하듯이 고숙련 근로자와 저숙련 근로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다면 저숙련 근로자에 유리한 혁신기술이 나오리라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 p.156-159 우리는 지역 요인이 어떤 사람의 생애소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좋은 지역(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 프리미엄(citizen premium)’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지역(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 페널티(citizen penalty)’를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민 등의 사안과 연관이 있으므로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시민권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정의(justice)’의 측면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지 고찰할 경우 철학적으로도 중요성을 띠는 주제다. --- p.174 중국 정부는 1980년대의 경제특구에서부터 최근 몇 년 동안의 상하이 증권거래소 운영에 이르는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체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취약점은 지방정부 관료들의 탐욕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부패했기 때문이든 다른 지방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든 악랄한 착취를 일삼는다. (중국) 그러나 중국처럼 고위직 간부의 선임 방식, 간부의 권한, 이들이 권좌에 머물 수 있는 기간 등을 명시한 법률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체제에서는 중앙의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강도 재벌’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분권체제 하에서는 중앙이 조금만 흔들려도 성급, 현급 정부가 지금보다 더 멋대로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럴 경우 중앙 정부가 성급 정부의 결정에 휘둘리는 결과가 나타난다. 궁극적으로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국가가 해체될 수 있다. 나는 국가 해체야말로 중국이 향후 수십 년 내에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 p.246 유럽 국가가 금권정치로 돌아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자나 난민 흡수 문제가 한두 세대 이후에도 정치계에 강력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주 문제로 모든 고소득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세계화에 의한 ‘일반적인’ 압력이 가중되어 지난 25~30년 사이에 중하위층의 소득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세계화의 압력이 두 가지 판이한 형태로 구체화된다. 노동력의 이동(이주)에 의한 압력과 상품의 이동(수입)과 자본의 이동(유출)에 의한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결국은 중산층의 포퓰리즘이나 자국민 우선주의가 나타난다. --- p.275-276 소득 불평등과 정치적 문제는 앞으로도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불평등 증가로 금권정치가 강화되긴 하겠지만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반면에 중국은 불평등의 증가로 기존 정치체제가 흔들리면서 집권 공산당이 좀 더 민족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으로 변질되거나 민주주의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둘 중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든 정치적 변화는 경제적 대혼란과 성장 하락을 수반할 것이다. --- p.289 모든 사람의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교육 프리미엄이 0에 수렴될 수 있다는 틴베르헌의 가설이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는 달리 임금 격차의 확대 추세가 뒤바뀌는 일은 없을 듯싶다. 행운뿐 아니라 가족의 기본 재산과 인맥의 중요성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서도 어떤 인맥을 쌓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중략) 정치인, 영화배우, 주식거래인의 자녀라고 해서 부모와 같은 직업을 수행할 최적임자라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 그저 부모가 이룬 직업적 성공이 자녀의 성공을 비롯한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일 뿐이다. 채용을 결정하는 사람과 친분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러한 친분을 쌓으려면 가족 배경과 인맥이 필요하다. --- p.291 높은 경제 성장은 계속해서 중요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저소득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와 중미의 일부 국가도 고성장을 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성장 둔화를 유도하기보다 최저소득국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소득국의 성장과 이주 압력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저소득국가가 성장세를 탄다면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 역시 억눌린 이주 수요나 이주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 정치계에서 포퓰리즘과 외국인 배척주의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미국에서는 이주가 정치적 논쟁거리(political football)로 악용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세계화가 낳은 소득 불평등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파헤쳤다!
99퍼센트 글로벌 흙수저를 위한 본격 불평등 경제학!!

세계화(世界化) 혹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시작
1988년, 세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1988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하게 변화한 전 세계 소득 분배 양상을 가계조사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1988~2008년 사이의 20년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부터 세계금융위기까지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이 시기는 ‘세계화 절정기’이기도 하다.
1988년이라는 연도를 출발점으로 선택한 까닭으로 저자는 크게 두 가지 핵심 사건을 든다. 첫째,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인구 10억이 넘는 중국을 필두로 중앙계획경제 체제로 운영되던 소비에트 연맹(소련)과 동유럽이 상호의존적인 세계경제권에 편입되었다. 인도조차 1990년대 초반에 추진된 개혁정책으로 다른 나라와의 경제 통합 정도가 점점 더 높아짐에 따라 세계경제권의 일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먼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고도 근로자를 통제할 수 있는 이점을 누렸다. ‘주변부’ 시장이 개척된 동시에 핵심 국가가 이러한 주변부 국가 현지에서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30여 년 이 흐른 뒤 돌아본 세계화의 이득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고, 일부는 그 어떠한 이득도 얻을 수 없었다. 마치 빛이 너무 밝으면 그림자도 더 짙은 것처럼 수혜자와 낙오자가 확연히 갈리고 만 것이다.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세계화의 이득,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표시한 맨 왼쪽에서부터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표시한 맨 오른쪽까지 전 세계 소득 분포 현황을 나타내는데, ‘구매력 평가지수(dollars of equal purchasing power)’로 환산한 1인당 세후가계소득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소득 등급을 매긴 것이다. 세로축은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인플레이션율과 국가 간 물가 수준 차이를 감안하여 조정한 실질소득(real income)의 누적 증가율을 나타낸다.
저자는 그래프에서 크게 3개 그룹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A지점은 소득 중간값 근처에 있으며 40~60분위에 속한다. B지점은 고소득국가의 중하위층 75~90분위 근처로 이들의 실질소득 성장률은 거의 ‘제로(0)’이다. 반면 C지점은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세계 최상위 1% ‘슈퍼리치’들이다.

세계화의 수혜자들: 글로벌 신층 중산층과 글로벌 금권집단

가장 높은 증가율은 A그룹 신흥국의 중간계층(중국, 인도, 타이, 방글라데시 등)과 C그룹 세계 최상위 1%에 속한 사람들이다. 물론 절대적 소득 증가액을 따지면 A그룹과 C그룹과의 차이는 크지만 밀라노비치는 앞으로 A그룹은 계속 성장을 이어갈 것이며, 특히 중국과 아시아의 이른바 ‘글로벌 신흥 중산층’이 주도할 것이라고 본다. 밀라노비치가 ‘글로벌 금권집단’이라고 칭한 최상위 1%의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부유했던 그들은 세계화의 비호 속에서 더 많이, 더 빠르게 자본을 축적해왔고 이후로도 약간의 둔화 국면은 맞겠지만 절대적으로 많은 부를 차지한 그들의 몫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망한다.

세계화의 낙오자들: 고소득국가의 중하위층

이들 중 대부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인 고소득국가 국민으로, 3/4 정도가 WENAO(Western Europe, North America, Oceania)로도 나타내는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 등 ‘전통적인 부자나라’와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그 나라 소득 분포에서 하위 절반을 차지한다. 이때 눈여겨볼 점이 B와 C 그룹의 간극이다. B와 C는 같은 고소득국가 배경임에도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난다. 실로 전 세계가 맞이한 경제 양극화의 단면도이며 오늘날 사회의 균열현상이 시작된 지점이다.

불평등의 시간을 역추적하다!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글로벌 불평등

오늘날 전 세계의 소득 분배 불평등도는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로 봤을 때, 1988년 0.722, 2008년 0.705, 2011년 0.67로 분명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최상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불평등은 ‘저성장, 대침체, 양극화’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틀로 작용해, 중?하위 소득계층, 이른바 ‘글로벌 중산층’의 경제권력을 약화시키고 공동화(空洞化)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쿠즈네츠 파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피케티 이론과의 비교점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가장 대담한 담론은 ‘쿠즈네츠 파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두 개의 다른 불평등 이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데, 대상은 20세기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와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다.
쿠즈네츠는 산업화 초기에 높아진 소득 불평등이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다시 낮아진다는 이른바 역U자 가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낮아졌던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다시 가파르게 높아졌다. 불평등의 심화는 개발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작용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피케티는 또 다른 식으로 설명했다. 1970년대까지 이어진 불평등 감소야말로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현상이며, 실제로 불평등 추세는 쿠즈네츠가설과 반대로 U자형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현대 경제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단지 두 번의 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건만이 그 정상적인 평형을 붕괴시켰다고 말이다.

그런데 밀라노비치는 이 두 가지 이론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불평등이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 되풀이해 오르내린다는 파동 개념을 도입하면 레이건-대처 혁명 직전과 가장 최근까지 나타난 불평등의 변화를 일반적인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고, 산업혁명 이전 불평등의 부침을 설명하기 어려운 피케티 이론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지난 500년에 해당하는 근대에 불평등의 증가와 감소가 교대로 나타났다는 점을 실증 자료를 토대로 증명하는데, 산업혁명 시기(19세기 중반,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를 기준으로 평균소득이 정체한 사회와 꾸준히 증가하는 사회로 나누어 살펴본다.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불평등 변화 양상

밀라노비치의 설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 일어난 불평등의 증가와 축소는 소득의 증가나 감소 때문이 아니었다. 흑사병 같은 대재앙 때문에 인구가 감소하면 노동력 또한 줄어들고, 그러면 실질임금이 상승한다. 그에 따라 임금 대비 지대 비율 감소하여 불평등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16세기에 모직생산이 늘어났던 스페인이나 1500년 이후 상업혁명을 겪었던 이탈리아 북부 도시의 사례를 예로 든다. 도시와 무역이 성장하면서 자본가들은 일시적으로 평균소득이 높아지고, 자본가들은 잉여소득을 축적하게 되면서 불평등도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평균소득이 대체로 정체된 상태에서는 흑사병 같은 유행성전염병, 신대륙의 발견, 나폴레옹 전쟁 등 우연하거나 외생적 사건으로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반면에, 평균소득이 꾸준히 상승하는 사회는 이전과 그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평균소득의 상승은 불평등이 증가할 ‘여지’를 제공한다. 밀라노비치는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영국,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과 네덜란드, 브라질과 칠레, 그리고 일본의 실증자료를 쿠즈네츠 파동에 대입해 성장과 불평등 간에 반드시 상충관계를 밝힌다. 그는 또한 산업화가 시작될 때 국가 내의 불평등(또는 계층 요인 불평등)이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격차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산업화 이후에는 국가 간 불평등(또는 지역 요인 불평등)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 간의 격차가 점점 더 좁아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소득 격차가 국가 안에서 한 번 더 일어나기 때문에 이후로는 계층 기반 불평등이 더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

2차 기술혁명과 함께 본격화된 최근의 불평등

산업화로 인해 쿠즈네츠 파동을 창출하는 힘이 ‘기술과 개방성 및 정책(TOP-Technology, Openness, Policy)’으로 변화되었다. 19세기에는 기술적 진보로 세계화와 정책 변화 모두가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작용하여 극적으로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는데, 노동자들은 농장에서 공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평균 소득과 불평등의 수준이 치솟았고 전 세계가 전례 없이 상호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그 후 여러 힘들이 나타났고, 그 중 몇몇은 악성 요인(전쟁, 정치적 혼란, 자연재해, 질병), 몇몇은 양성적인 영향(교육기회 확대, 사회적 이전의 증가, 누진세 양성)이기도 하다. 그 힘들의 조합은 1970년대에 불평등을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 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2 쿠즈네츠 곡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차 기술혁명은 19세기 초반의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소득 격차의 확대를 불러왔는데, 고숙련 근로자가 저숙련 근로자에 비해 신기술로 훨씬 더 많은 보상을 얻고, 자목의 몫과 수익률 증가했다. 그리고 고소득국가는 중국과 인도와의 경쟁에 노출되었으며, 수요 구조와 일자리 구조가 제조 부문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노동시장은 저숙련?저임금 근로자로 채워진 것이다. 금융 같은 일부 서비스 직종만 높은 급여 적용받았을 뿐이다. 한편 외국 경제하에서 만들어진 값싼 기술은 부유한 세계 노동자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고 기업이 쉽게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거기에 부유층 친화적 정책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이 후보자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제력 하락은 정치력의 상실과 함께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정보혁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바퀴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니까 말이다.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자유로워지고 은행과 주식시장 서비스 이용이 어디서든 가능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의 이동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밀라노비치는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보다는 그와 정반대로 “자본과 자본가들에게 조국이 없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평한다.

21세기 불평등,
전 세계에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다!

'브렉시트, 플라이 오버 컨트리, 新고립주의, 제노포비아'
이러한 현상을 발생시킨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는 약 150년 전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최초로 흥미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글로벌 불평등이 국가 간 소득 격차의 확대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 국가의 중위소득 증가로 국가 간 소득 격차는 점점 좁혀들면서, 글로벌 불평등이 축소되는 데 그치지 않고 간접적으로는 국가 내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결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밀라노비치가 꼽은 현대 고소득국가에서 불평등 증가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 또한 중산층 공동화와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금권정치의 고착화)다. 그는 이러한 위험이 대중의 계급적 저항과 겹치면서 포퓰리즘(populism)과 자국민 우선주의(nativism)가 득세하는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최근의 글로벌 정세는 점점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듯하다. 시리아 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난 난민들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설치된 장벽, 이주민에 대한 거부와 국가 내 인종 간 차별 등, 자본 유입이나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에 대항하는 보호조치, 2016년 전 세계인이 목도한 영국의 EU탈퇴 결정(브렉시트),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의 변수가 된 백인노동자 계층(플라이 오버 컨트리의 지지층) 등 그 예는 너무나 많다. 밀라노비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무거운 경고를 보낸다. 그는 단적으로 말해 “금권정치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세계화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고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면모는 유지하되 세계화에 대한 노출 정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라고 평할 정도다. 어쩌면 지금의 글로벌은 20세기 말~21세기 초반에 심화된 불평등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우울한 코끼리’를 위한
두 번째 희망을 찾아서
하지만 밀라노비치는 21세기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방안도 놓치지 않고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 내 불평등을 줄이려면 현재의 소득에 대한 과세보다는 기초자본(endowment, 자본 소유와 교육 수준)의 평등화에 좀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과세나 재분배로 현재의 소득에 손을 대기보다는 자본 소유권과 교육의 장기적인 평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막대한 자산을 물려주지 못하도록 상속세를 인상하는 정책(피케티가 촉구하는 바와 같다),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주식 분배를 유도하는 기업 관련 세금 정책,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금융자산을 취득하고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세금 정책과 행정”을 제안했다.
더불어 근본적인 평등화를 이루려면 누구나 높은 교육 수익률을 내는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주고 학교 전반의 교육 수익률을 평준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체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학교 간 교육 품질을 평준화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투자와 재정 지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글로벌 불평등의 경우에는 아프리카의 저소득국가와 아시아와 중미 일부 국가가 고성장을 달성하고, 이민 장벽을 완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본다. 저소득국가가 성장세를 탄다면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 역시 잠재돼 있던 이주 수요나 이주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면 유럽 정치계에서 포퓰리즘과 외국인 배척주의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미국에서는 이주가 정치적 쟁점거리로 악용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이것은 앞으로 논란의 소지가 큰 방안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의 불안과 분노는 어디에서 왔는가
21세기 한국과 불평등

우리는 여전히 어느 나라에 태어나서 어느 나라에서 사느냐가 개개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저성장의 늪’이라 표현되는 최근 몇 년간은 더없이 그러하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지니계수(가처분소득 기준)는 0.341로 전년보다 0.003포인트 낮아졌다지만, 분배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은 지난해 3분기 4.46에서 올해 3분기 4.81로 악화됐다고 한다. 3분기 기준 고소득층(상위 20%)이 저소득층(하위 20%)보다 소득이 4.81배 많다는 뜻이다. 거기다 지난 2016년 가을 이후로는 ‘불안, 분노’ 같은 말을 미디어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게 된다. 경제적 ‘불만족’과 사회적 ‘불안’이 합쳐져 ‘불평등’이 된 것인지 혹은 그 모두가 뭉쳐 ‘분노’에 이른 것인지 경계나 선후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준을 어느 해(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 또는 1948년 정부 수립)로 하든 건국 이래 대한민국은 ‘평등해본 기억’이 없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경제난에 절대다수의 국민이 허덕이며 버텨냈다. 이후엔 고속 성장을 거듭했던 1970년대~1980년대 후반(1980년 지니계수 0.39, 1988년 0.34)을 지나니 그에 대한 부작용이 바로 시작됐다. 고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은 정경유착, 빈부격차, 사회 양극화를 불러왔고, 1997년 IMF외환위기를 맞아 2000년까지 회복하는 동안 보통의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사회적 기회와 경제적 자본 면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밀라노비치가 재정의한 쿠즈네츠 파동으로 보자면 불평등의 감소와 증가는 오르내린다지만 그럼에도 이런 질문은 남는다. ‘지금의 불평등을 해결한 방법은 없는 정말 것일까?’

멈추지 않는 불평등의 시계,
그렇다면 21세기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2016년 한국을 찾았던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는 “불평등은 한국만의 경향이 아니며 소득 격차가 아닌 다른 요인에서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재분배’라는 획일적인 해결책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이끌어 낸 진정한 이유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한국 상황에 맞는 방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의미다.

불평등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는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 또한 조언을 남겼다. 그는 “한국은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성장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기존의 고속 성장에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며,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조언과 밀라노비치가 제안하는 방안을 비교해보면 한국사회는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과제로 보인다. 이에 관련해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것이 이른바 ‘기본소득제’ 논의인데, 현재로서는 세액 증가에 대한 우려와 제도 자체의 공정성에 때문에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

그렇지만 쟁점 자체가 주는 의미는 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본질은 대다수의 국민이 적어도 현재보다는 조금 더 만족하는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열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제도와 정책이 ‘내생적(endogenous)’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불안, 불만족, 불평등’에서 ‘안정, 만족, 평등’ 쪽으로 무게중심을 약간이라도 옮겨갈 수 있는 정책이 나온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시켜나갈 여지는 있을 것이다. 아직 21세기는 80여 년이 시간이 남아 있고 한국은 저성장의 벽을 넘어야 하니 말이다.